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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노동의 한국 미술 — 김준권의 산, 민정기의 들녘, 이철수의 흙

미술 산책 · 발행 2026-04-29 · 씨앗페

한국 회화의 가장 오래된 모티프는 농경입니다. 신학철의 〈모내기〉(1987)에서 시작된 동시대 농경 회화의 흐름을 김준권의 채묵목판, 민정기의 양평 들녘, 이철수의 한지 판화, 정영신의 오일장 사진으로 따라갑니다.

농경·노동의 한국 미술 — 김준권의 산, 민정기의 들녘, 이철수의 흙

흙과 손. 모내기와 추수. 산과 들녘. 한국 회화의 가장 오래된 모티프는 농경입니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에서 시작해 1980년대 신학철의 〈모내기〉, 1990년대 이후 민정기·이철수가 양평·제천에서 다시 잡아든 농촌의 시간, 그리고 동시대 김준권의 채묵목판과 정영신의 오일장 사진까지 — 농경과 노동의 미술은 멈추지 않고 흘러왔습니다.

이 글은 씨앗페 2026 출품작 가운데 농경·노동을 다룬 작품들을 묶어 한국 동시대 농경 미술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큐레이션입니다.

출발점 — 신학철 〈모내기〉(1987)

한국 동시대 농경 회화의 가장 큰 정전은 신학철의 〈모내기〉(1987)입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두 농민이 모내기하는 모습을 가운데 두고, 외세와 분단·자본의 폭력이 화면을 둘러싸는 1987년 광주의 폭풍과 같은 화면. 이 작품은 발표 직후 국가보안법으로 압수당했고, 이후 한국 미술의 검열사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한 점이 되었습니다.

본 글에서는 〈모내기〉가 열어준 자리, 즉 농경을 미술의 중심 모티프로 다시 가져온 그 흐름이 1990년대 이후 어떻게 이어졌는가를 추적합니다.

1. 김준권 — 채묵목판, 산이 산처럼 서 있는 자리

김준권, 〈산처럼〉, 2021, 채묵목판, 50x45cm
김준권, 〈산처럼〉, 2021, 채묵목판, 50x45cm

김준권은 한국 채묵목판(彩墨木版) — 즉 색채와 먹을 함께 쓰는 목판화 — 의 정점에 서 있는 작가입니다. 충북 제천을 작업실 삼아 30년 동안 한국의 산을 새겨왔습니다.

〈산처럼〉(2021, 50x45cm)은 그 30년의 한 결입니다. 산이 산처럼 서 있다는 것 — 즉 풍경이 그저 풍경으로 거기 있다는 것이 농경 사회의 가장 깊은 평화입니다. 김준권의 산은 신학철의 〈모내기〉가 그렸던 격동의 화면 옆에 놓이는 또 다른 농경의 자리, '추수 후의 고요'입니다.

김준권, 〈푸른 소나무〉, 2023, 유성목판, 45x80cm
김준권, 〈푸른 소나무〉, 2023, 유성목판, 45x80cm

소나무는 한국 농경 마을의 입구에 서 있던 신령한 나무입니다. 김준권의 〈푸른 소나무〉(2023)는 단원의 송하맹호도(松下猛虎圖)에 등장하는 그 소나무를 동시대 어법으로 다시 새깁니다. 농경이 사라진 도시에서, 소나무는 무엇을 지키고 있는가 — 그 질문이 화면에 새겨져 있습니다.

2. 민정기 — 양평의 들녘과 산수

민정기는 1979년 '현실과 발언' 창립회원으로 한국 민중미술의 1세대입니다. 1990년대 이후 경기도 양평에 정착해, 도시의 격동을 떠나 농촌의 시간을 그려오고 있습니다. 민정기 작가의 입체적 프로필은 현실과 발언에서 양평의 산수화로에서 다뤘습니다.

민정기, 〈서후리에서 - 벼베기〉, 2025, 캔버스에 유채, 45.5x53cm
민정기, 〈서후리에서 - 벼베기〉, 2025, 캔버스에 유채, 45.5x53cm

서후리는 양평군의 작은 마을이고, 〈서후리에서 - 벼베기〉(2025)는 작가가 자신이 사는 동네의 추수 풍경을 정면에서 잡은 한 점입니다. 신학철의 〈모내기〉가 농경을 시대의 알레고리로 그렸다면, 민정기의 벼베기는 그 알레고리가 가라앉은 뒤 남은 일상의 시간 — '실제로 거기서 벼를 베는 사람들의 시간'을 그립니다.

민정기, 〈추수〉, 2025, 실크스크린(판화), 57x41.5cm
민정기, 〈추수〉, 2025, 실크스크린(판화), 57x41.5cm

같은 추수의 호흡을 실크스크린 판화로 옮긴 〈추수〉(2025). 민정기는 회화 원작과 함께 판화 에디션을 동시에 발표하는 작가로, 회화 원작이 ₩1,800만 선이라면 같은 도상의 판화는 ₩100만 선에 형성됩니다. 같은 화면을 두 가격대로 가질 수 있다는 점에서 민정기 컬렉팅의 입문선이 됩니다.

민정기, 〈속리산 돌거북〉, 2025, 캔버스에 유채, 60.6x45.5cm
민정기, 〈속리산 돌거북〉, 2025, 캔버스에 유채, 60.6x45.5cm

속리산의 돌거북은 한국 농경의 풍수에서 마을을 지키는 사신(四神)의 하나입니다. 민정기는 양평 들녘만이 아니라 한국 산촌의 신화 지형도 다시 그리고 있습니다. 〈속리산 돌거북〉(2025)은 농경 풍경 너머의 농경 정신 — 즉 '땅을 지키는 자리'를 잡아둔 한 점입니다.

3. 이철수 — 한지 위의 절기

이철수는 충북 제천에서 농사를 지으며 판화를 새기는 독학 판화가입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의 선봉에 섰다가 1990년대 이후 선(禪)의 영성으로 옮겨갔고, 지금은 농경의 절기를 한지 위에 새기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작가의 일대기는 저항에서 선으로 — 이철수 작가의 판화 세계에 있습니다.

이철수, 〈입춘〉, 2018, 목판, 한지, 50x42cm
이철수, 〈입춘〉, 2018, 목판, 한지, 50x42cm

입춘(立春)은 24절기 중 첫째, 농경의 한 해가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이철수는 절기 자체를 그림의 제목으로 삼아 한국 농경의 시간 감각을 한 장씩 새깁니다. 〈입춘〉(2018)의 한지 위 목판 자국은 농부가 첫 쟁기를 흙에 박아 넣을 때의 그 정확한 동작과 닮아 있습니다.

이철수, 〈물흐르고 흘러 바다〉, 2016, 목판, 한지, 98x42cm
이철수, 〈물흐르고 흘러 바다〉, 2016, 목판, 한지, 98x42cm

농경은 결국 물의 일입니다. 모내기의 물, 추수기 흘려보내는 물, 강이 되어 바다로 가는 물. 이철수의 〈물흐르고 흘러 바다〉(2016)는 그 흐름을 98cm의 가로 화면에 담은 한 점입니다. 한국 농경의 시공간이 한 장의 한지 위에 옮겨진 보기 드문 큰 호흡입니다.

4. 정영신 — 오일장의 사람들

농경의 화면이 회화·판화에서 멈추지 않습니다. 정영신은 40년째 전국의 오일장을 카메라에 담아온 기록사진가입니다. 600여 곳의 장터, 수만 장의 사진. 작가의 입체적 프로필은 정영신 — 사진으로 기록하는 시간의 층위에 있습니다.

오일장은 한국 농경 사회의 가장 살아 있는 흔적입니다. 닷새에 한 번 열리는 시장은 농민이 자신의 작물을 직접 들고 나오는 자리이고, 같은 자리에서 같은 농민·같은 상인을 40년 동안 만나는 일은 한 사람의 평생을 사진 한 장에 기록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정영신의 사진은 농경의 '결과'가 아니라 '과정'을 잡습니다. 모내기·추수의 결과로 거둔 농산물이 시장 좌판에 펼쳐지는 그 순간 — 그것이 농경의 가장 사회적인 순간이고, 정영신은 그 자리를 평생 따라간 작가입니다.

농경 미술 컬렉팅 가이드

농경 미술은 다음 두 갈래로 컬렉팅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 흐름 — 1987년 신학철 〈모내기〉를 정점으로 1990년대 이후 양평·제천 농촌으로 옮겨간 한국 미술사의 한 줄기. 이 관점에서는 민정기 회화·이철수 판화·김준권 채묵목판이 권합니다.

일상의 풍경 — 도시 거실에 농경의 시간을 들이는 것. 이 관점에서는 작은 사이즈의 판화가 어울립니다. 김준권 〈푸른 소나무〉, 민정기 〈추수〉(실크스크린), 이철수 〈입춘〉이 입문선입니다.

작가대표 작품가격대적합 공간
김준권〈산처럼〉 채묵목판₩4,000,000거실 메인
김준권〈푸른 소나무〉 유성목판₩7,000,000거실·복도
민정기〈서후리에서 - 벼베기〉 유채₩18,000,000거실 메인
민정기〈추수〉 실크스크린₩1,000,000침실·서재
이철수〈입춘〉 목판/한지₩1,200,000다실·서재
이철수〈물흐르고 흘러 바다〉 목판/한지₩2,500,000거실 가로벽

농경 미술은 채광이 부드러운 공간에서 가장 잘 살아납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거실 메인 벽이 첫 번째 선택지이고, 직사광선이 강한 자리는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FAQ

Q. 농경을 그린 한국 동시대 작가는 또 누가 있나요? A. 본 글에서 다룬 김준권·민정기·이철수·정영신 외에, 박재동(농촌 풍속), 이홍원(전북 농촌), 이종구(서산 농민) 같은 작가들이 있습니다. 박재동에 대해서는 붓으로 연대하다에서 따로 다뤘습니다.

Q. 채묵목판은 일반 목판화와 어떻게 다른가요? A. 채묵목판(彩墨木版)은 색채(채)와 먹(묵)을 함께 사용하는 목판화 기법입니다. 일반 흑백 목판화보다 색의 층이 풍부하고, 한국화의 수묵 전통과 서양 판화 기법이 만나는 자리에 있습니다. 김준권은 이 기법의 동시대 정점을 보여주는 작가로 평가받습니다.

Q. 신학철 〈모내기〉를 직접 살 수 있나요? A. 〈모내기〉(1987) 원작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장이며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습니다. 신학철 작가의 다른 시기 작품은 갤러리·페어를 통해 거래됩니다.

Q. 회화 원작과 판화 에디션 중 어느 쪽이 좋은가요? A. 예산·취향에 따라 다릅니다. 민정기의 경우 같은 도상의 회화 원작(₩1,800만)과 실크스크린 판화(₩100만)가 동시에 있어 ~18배 가격 차이입니다. 미술사적 가치는 원작이 우위이지만, 일상에서 보고 즐기는 그림으로는 판화도 충분히 살아 있습니다. 자세한 비교는 같은 작가, 판화와 원화의 가격이 10배 차이 나는 이유에 정리했습니다.

Q. 농경 미술은 왜 지금 다시 주목받나요? A. 도시화·기후위기·식량주권 같은 동시대 문제가 농경을 다시 정신적·정치적 자리로 올렸기 때문입니다. 1980년대 민중미술이 농경을 알레고리로 다뤘다면, 2020년대 동시대 미술은 농경을 '실제로 살아가는 시간'으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김준권·민정기·이철수의 동시대 작업은 그 흐름의 가장 단단한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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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 미술은 한국 회화사의 가장 깊은 지층이자, 동시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가장 살아 있는 흐름입니다. 김준권·민정기·이철수·정영신의 작업을 한 자리에 두고 보면, 한국 미술이 1987년 〈모내기〉를 떠나 어디로 가고 있는지가 한 번에 보입니다.

작품 판매 수익은 동료 예술인을 위한 상호부조 기금으로 이어집니다. 농경이 공동체의 일이었듯, 작가의 작업도 결국 동료 작가들의 자리를 함께 짓는 일입니다.

한국 미술에서 재료의 미학을 함께 탐색한 작가들의 이야기도 읽어보세요: 한국 종이 한지의 재료학 — 현대 미술 작가 3인이 다루는 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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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6-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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