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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 판화의 지형 — 씨앗페에서 만나는 다섯 계보

미술 산책 · 발행 2026-04-20 · 씨앗페

이철수·김준권·이윤엽·류연복·김종환. 한국 현대 판화사의 중요한 이름들이 씨앗페 2026에 한자리에 모였다. 목판·실크스크린·에칭·리토그래피가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의 판화를 말한다.

류연복, 〈민들레 촛불〉, 판화
류연복, 〈민들레 촛불〉, 판화

판화는 한국 미술에서 오랫동안 '민중의 미술'로 불려 왔다. 1980년대 그림마당 민 시절, 판화 한 장이 광장에 배포되고 집 벽에 걸릴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매체였기 때문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맥은 끊기지 않았다. 씨앗페 2026 출품작 중 판화 작가 다섯 명은 각기 다른 기법과 세대를 대표하면서도, 한 자리에 앉으면 한 세대의 판화 계보를 이룬다.

다섯 계보

이철수 — 저항에서 선으로

1954년생 목판화가. 1980년대 민중미술의 가장 대중적인 얼굴이었고, 이후 '반야심경' 연작 등을 통해 선불교적 세계관으로 이동했다. 씨앗페 출품작 〈신령스러운〉은 96×64cm 대형 판화로, 그의 최근 정신의 깊이를 보여준다.

저항에서 선으로: 이철수 작가의 판화 세계

김준권 — 나무에 새기는 한국의 풍경

한국 자연과 풍경을 목판에 새겨 온 중견 작가. 칼 끝이 지나간 결이 그대로 "풍경의 뼈대"가 된다.

김준권: 나무에 새기는 한국의 풍경

이윤엽 — 나무판에 새긴 사람들

1969년생. 민중미술 계보 위에서 오늘의 노동자·시민·일상의 얼굴을 목판에 새긴다. 거친 선의 힘과 따뜻한 시선이 공존. 씨앗페 출품작 〈좋은소식〉이 대표적이다.

이윤엽: 나무판에 새긴 사람들

이윤엽, 〈좋은소식〉
이윤엽, 〈좋은소식〉

류연복 — 판화의 깊이, 삶의 결

한국 판화의 결을 깊게 파 온 작가. 촛불·민들레 같은 친숙한 도상에 판화의 힘을 싣는다. 씨앗페에 〈민들레 촛불〉을 출품했다.

류연복: 판화의 깊이, 삶의 결

김종환 — 판화공방을 운영하는 판화가

한국현대판화가협회·홍익판화가협회 회원. 판화공방 '판화방'을 직접 운영하며, 《반쪽이》·《홍길동》·《한비자》 같은 그림책에 판화를 입혀 왔다. 고장난 프린터 부품으로 '두상' 연작을 만드는 작업으로도 유명하다.

고장난 프린터에서 두상이 태어나기까지: 김종환의 판화방

김종환, 〈두상연구 - 가르마가 있는 두상1〉
김종환, 〈두상연구 - 가르마가 있는 두상1〉

네 가지 기법이 한자리에

다섯 작가의 판화는 기법도 나뉜다.

  • 목판화(woodcut): 이철수·김준권·이윤엽·류연복 — 칼이 지나간 거친 결
  • 실크스크린(serigraphy): 이철수·민정기 — 선명한 색면
  • 에칭(etching): 김종환 — 섬세한 선
  • 리토그래피(lithography): 김종환 — 회화 같은 명암

같은 '판화'라도 매체에 따라 화면의 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기법별 차이와 에디션 넘버링의 의미는 판화와 원화, 에디션 넘버링 읽는 법에서 자세히 다룬다.

판화를 수집한다는 것

판화는 '복제품'이 아니라 '원본이 여러 점 있는 미술 형식'이다. 작가가 직접 판을 새기고 직접 찍어낸 뒤 연필로 서명과 번호를 넣는다. 3/30이라고 적혀 있다면 30장 중 3번째 장이라는 뜻.

판화를 사는 세 가지 장점:

  1. 접근 가능한 가격 — 회화가 수백만 원대일 때 판화는 30~100만원대에서 만난다
  2. 원본 소장의 경험 — 에디션 번호·작가 서명이 있는 판화는 감정·보험·양도에서 원본으로 취급
  3. 표준 규격 — 액자·걸이 선택이 쉽다

처음 사는 사람을 위해: 10만원부터 500만원까지 예산별 고르기 · 작품 걸기 가이드

판화의 연대 — 여럿이 함께 갖는 미술

한국 예술인의 84.9%가 제도 금융에서 배제된다. 씨앗페 출품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이 만드는 상호부조 기금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진다.

판화의 본성 자체가 연대에 가깝다. 한 판에서 여러 장이 나오고, 그 여러 장이 여러 벽으로 흩어진다. 한 작가의 손에서 출발한 이미지가 많은 사람의 집에 동시에 존재한다. 씨앗페에서는 그 흩어짐이 또 한 번 기금으로 모인다. 판이 찍히는 동안 한 장 한 장이 다른 예술인의 작업실로 건너가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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