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수·김준권·이윤엽·류연복·김종환. 한국 현대 판화사의 중요한 이름들이 씨앗페 2026에 한자리에 모였다. 목판·실크스크린·에칭·리토그래피가 각자의 방식으로 오늘의 판화를 말한다.

판화는 한국 미술에서 오랫동안 '민중의 미술'로 불려 왔다. 1980년대 그림마당 민 시절, 판화 한 장이 광장에 배포되고 집 벽에 걸릴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매체였기 때문이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맥은 끊기지 않았다. 씨앗페 2026 출품작 중 판화 작가 다섯 명은 각기 다른 기법과 세대를 대표하면서도, 한 자리에 앉으면 한 세대의 판화 계보를 이룬다.
다섯 계보
이철수 — 저항에서 선으로
1954년생 목판화가. 1980년대 민중미술의 가장 대중적인 얼굴이었고, 이후 '반야심경' 연작 등을 통해 선불교적 세계관으로 이동했다. 씨앗페 출품작 〈신령스러운〉은 96×64cm 대형 판화로, 그의 최근 정신의 깊이를 보여준다.
김준권 — 나무에 새기는 한국의 풍경
한국 자연과 풍경을 목판에 새겨 온 중견 작가. 칼 끝이 지나간 결이 그대로 "풍경의 뼈대"가 된다.
이윤엽 — 나무판에 새긴 사람들
1969년생. 민중미술 계보 위에서 오늘의 노동자·시민·일상의 얼굴을 목판에 새긴다. 거친 선의 힘과 따뜻한 시선이 공존. 씨앗페 출품작 〈좋은소식〉이 대표적이다.

류연복 — 판화의 깊이, 삶의 결
한국 판화의 결을 깊게 파 온 작가. 촛불·민들레 같은 친숙한 도상에 판화의 힘을 싣는다. 씨앗페에 〈민들레 촛불〉을 출품했다.
김종환 — 판화공방을 운영하는 판화가
한국현대판화가협회·홍익판화가협회 회원. 판화공방 '판화방'을 직접 운영하며, 《반쪽이》·《홍길동》·《한비자》 같은 그림책에 판화를 입혀 왔다. 고장난 프린터 부품으로 '두상' 연작을 만드는 작업으로도 유명하다.
→ 고장난 프린터에서 두상이 태어나기까지: 김종환의 판화방

네 가지 기법이 한자리에
다섯 작가의 판화는 기법도 나뉜다.
- 목판화(woodcut): 이철수·김준권·이윤엽·류연복 — 칼이 지나간 거친 결
- 실크스크린(serigraphy): 이철수·민정기 — 선명한 색면
- 에칭(etching): 김종환 — 섬세한 선
- 리토그래피(lithography): 김종환 — 회화 같은 명암
같은 '판화'라도 매체에 따라 화면의 인상이 완전히 달라진다. 기법별 차이와 에디션 넘버링의 의미는 판화와 원화, 에디션 넘버링 읽는 법에서 자세히 다룬다.
판화를 수집한다는 것
판화는 '복제품'이 아니라 '원본이 여러 점 있는 미술 형식'이다. 작가가 직접 판을 새기고 직접 찍어낸 뒤 연필로 서명과 번호를 넣는다. 3/30이라고 적혀 있다면 30장 중 3번째 장이라는 뜻.
판화를 사는 세 가지 장점:
- 접근 가능한 가격 — 회화가 수백만 원대일 때 판화는 30~100만원대에서 만난다
- 원본 소장의 경험 — 에디션 번호·작가 서명이 있는 판화는 감정·보험·양도에서 원본으로 취급
- 표준 규격 — 액자·걸이 선택이 쉽다
처음 사는 사람을 위해: 10만원부터 500만원까지 예산별 고르기 · 작품 걸기 가이드
판화의 연대 — 여럿이 함께 갖는 미술
한국 예술인의 84.9%가 제도 금융에서 배제된다. 씨앗페 출품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이 만드는 상호부조 기금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진다.
판화의 본성 자체가 연대에 가깝다. 한 판에서 여러 장이 나오고, 그 여러 장이 여러 벽으로 흩어진다. 한 작가의 손에서 출발한 이미지가 많은 사람의 집에 동시에 존재한다. 씨앗페에서는 그 흩어짐이 또 한 번 기금으로 모인다. 판이 찍히는 동안 한 장 한 장이 다른 예술인의 작업실로 건너가는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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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페
발행 2026-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