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9년 '현실과 발언' 창립회원이자 민중미술의 주요 작가. 1990년대 이후 경기도 양평에 거처를 옮긴 민정기는 이제 속리산 돌거북과 서후리의 벼베기를 그린다.

1979년 말, '현실과 발언'이 창립됐다.
민정기(閔晶基, Min Joung-Ki, b.1949)는 이 단체의 창립회원이었다. 그리고 1990년 공식 해체기까지, 한국 민중미술 진영의 핵심 작가 중 한 사람으로 자리잡았다. 40년이 넘는 세월. 민정기의 붓은 그동안 이발소의 촌스러운 그림부터 양평의 산수(山水)까지, 한국의 시각 지형 여러 곳을 통과해왔다.
이발소그림, 고급미술 회랑에 들어오다
초기의 민정기는 소위 '이발소그림'으로 불리던, 촌스럽고 세련되지 않은 그림을 다시 모방해 고급미술의 회랑에 내놓았다.
"'통속'의 사회에서 통속적으로 살고 있다는 우리 모두의 자의식을 건드린 것이다." 평단의 요약이다. 반미학적 다다이스트적 기획. 음울한 시대의 알레고리. 그의 초기 작업은 '예술과 통속의 경계' 자체를 전시대 위에 놓는 도발이었다.
민중적 삶의 그늘진 길모퉁이를 외면하지 못했던 연민의 시선. 그것이 민정기의 출발점이었고, 이후 그가 어디를 가든 저류처럼 남아 있는 톤이다.
숲으로, 땅으로, 지층으로
1987년, 민정기는 경기도 양평으로 거처를 옮겼다. '현실과 발언'의 공식 해체(1990)보다 앞선 이주였다. 그리고 '산과 땅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회화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에 들어섰다. 산수화, 화훼화.
그러나 이 이동을 '민중미술에서 산수화로의 투항'으로 읽어서는 안 된다. 평단의 해석은 달랐다. "그는 숲으로 향해 걸어갔다. 그러나 정확히는 땅을 향해, 역사의 지층을 향해서다. 그러다가 그는 저잣거리로 나선다. 길, 도로, 강물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다. 그것은 '오늘로 향하는 길'이다."
모든 것이 실증화(positivity)되고, 깨끗해져만 가는 현대 미술의 방향과 '어긋나는 길'. 양평 시대의 산수화는 지세(地勢) 속에 거처를 정하고 풍수(風水)를 지혜로 여겼던 옛사람들의 흔적을 좇는다. 그래서 민정기의 산수는 관상용의 풍경이 아니라, 동시대적 삶과의 거리를 자각하게 하는 장치다.
속리산 돌거북, 서후리의 벼베기

씨앗페 2026 출품작은 모두 2025년에 제작된 최근작이다. 유채 두 점, 실크스크린 판화 두 점.


속리산의 돌거북은 오래된 시간을 품은 자연물이고, 양평 서후리의 벼베기는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되는 노동의 풍경이다. '역사의 지층'과 '오늘의 저잣거리'를 동시에 담는 작가의 태도가 네 점 안에 압축되어 있다.
판화 두 점은 민정기 같은 원로 작가의 작품을 상대적으로 접근 가능한 가격대에서 소장할 수 있게 해주는 채널이기도 하다.
원로의 연대
한국 예술인의 84.9%가 제도 금융에서 배제된다. 씨앗페 출품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이 만드는 상호부조 기금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진다.
'현실과 발언' 창립에 참여한 작가가 40여 년이 지난 시점에도 여전히 동료 예술인을 위해 자신의 그림을 내놓는다. 민중미술이 '체제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됐다면, 그 비판의 정신은 오늘날 '상호부조'라는 형식 안에서도 살아남는다. 민정기의 이번 출품은 40년의 연대가 끊기지 않았다는 작가 자신의 기록이기도 하다.
풍경의 그늘, 회화의 그늘
민정기의 그림에는 '그늘'이라는 단어가 자주 얹힌다. 민중적 삶의 그늘진 길모퉁이, 풍경의 그늘, 회화의 그늘.
그늘은 빛이 도달하지 못하는 자리만을 뜻하지 않는다. 빛이 어디서 오는지를 오히려 또렷하게 가리키는 자리이기도 하다. 양평의 산수화 앞에서 오늘의 삶과의 거리를 느낀다면, 그것이 민정기의 그늘이 하는 일이다.
씨앗페도 그런 그늘 중 하나다. 눈에 잘 보이지 않지만, 그 자리가 있어서 빛이 어디로 향해야 할지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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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6-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