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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으로 연대하다: 박재동 작가의 25점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04-07 · 씨앗페

씨앗페 2026 출품 작가 127명 중 가장 많은 작품을 내놓은 사람은 박재동이다. 수채화 원화 6점, 아트프린트 15점, 노무현 시리즈까지. 25점을 출품한 그의 선택은 어떤 신념에서 나온 것일까.

127명 중 가장 많이 낸 사람

숫자 하나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25.

씨앗페 2026에 참여한 작가는 127명이다. 총 354점의 작품이 걸렸다. 한 작가가 평균 약 2~3점을 출품한 셈이다. 그런데 박재동은 혼자 25점을 냈다.

그것은 단순히 많이 낸 것이 아니다. 30만 원짜리 아트프린트부터 500만 원대 수채화 원화까지, 가격대도 다양하게 구성했다. 자신의 작품을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도록 문을 넓힌 것이다.

한겨레 1면을 바꾼 붓

박재동은 시사만화가이자 수채화가다. 한겨레 창간(1988년) 초기부터 시사만평을 그렸다. 그의 붓은 정치 권력을 비틀고, 시대의 모순을 캐리커처로 압축했다. 신문 1면이라는 가장 공적인 지면에서 가장 날카로운 시선을 던진 작가였다.

그런데 그의 수채화를 보면 또 다른 박재동이 있다.

만평의 날카로움 대신, 투명한 수채 물감이 번지듯 퍼지는 부드러운 색조. 〈도시풍경〉(2001), 〈바닷가의 소년〉(2000), 〈고향 마을 풍경〉(2002). 일상의 한 장면을 조용히 들여다보는 시선이다. 만평 작가의 독설과 수채화 작가의 서정은 같은 붓끝에서 나온다. 다만 방향이 다를 뿐이다.

박재동, 〈도시풍경〉, 2001, 수채화, 34.5×24cm
박재동, 〈도시풍경〉, 2001, 수채화, 34.5×24cm

25점의 구성: 접근성이라는 전략

박재동의 출품작을 펼쳐보면 구성이 보인다.

수채화 원화는 300만~500만 원대다. 〈도시풍경〉 〈바닷가의 소년〉 〈고향 마을 풍경〉 〈소녀〉 〈여인〉 등이다. 이것은 작가의 손이 직접 닿은 유일한 작품이다.

아트프린트 15점은 30만 원이다. 〈할머니 - 아이고 우리손자〉 〈촛불〉 〈한강변〉 〈달빛아래 연인〉 〈난다 날아라〉 등 그가 수십 년간 그려온 소박한 풍경과 인물들이다. 30만 원. 소장이 불가능하지 않은 금액이다.

노무현 시리즈도 있다. 〈노무현〉이라는 제목의 수채 작품(150만 원)과 다섯 점짜리 묶음. 박재동은 오래전부터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려왔다. 그 작품들이 이번 연대의 장으로 나왔다.

가장 많은 작품을 낸다는 것은 가장 많이 베팅한다는 뜻이다.

박재동, 〈촛불〉, 2017, 아트프린트, 30×30cm
박재동, 〈촛불〉, 2017, 아트프린트, 30×30cm

수채화가 가진 투명함

수채화는 덧칠이 어렵다. 한 번 번진 색은 거두어들이기 힘들다. 그래서 수채화 작가는 결국 자신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조차 그것을 받아들이면서 그림이 완성된다.

박재동의 수채화가 오랜 세월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이유가 거기 있다. 기교보다 솔직함이 먼저 보인다. 할머니가 손자를 보는 눈빛, 해 질 녘 한강의 잔물결, 어린 소녀의 표정. 그것들이 물감처럼 번지며 화면에 스민다.

만평에서 그는 사회를 비판했다. 수채화에서 그는 사람을 기록했다. 두 작업 모두 박재동이라는 작가의 일관된 관심에서 나온다.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 그 삶이 어떻게 존엄한가.

박재동, 〈바닷가의 소년〉, 2000, 수채화
박재동, 〈바닷가의 소년〉, 2000, 수채화

25점이 만들어낼 것

씨앗페의 구조는 이렇다. 작품이 팔리면 그 수익이 상호부조 기금으로 들어간다. 한국스마트협동조합이 기금을 운용하고, 협약 금융기관이 기금의 약 7배 규모를 연 5% 고정금리로 예술인에게 빌려준다. 신용등급 심사는 없다.

2022년 12월 이후 이 구조로 354건의 대출이 실행됐다. 총 지원액은 약 7억 원. 상환율은 95%다. 한국 예술인의 84.9%가 제도권 금융에서 배제되고, 48.6%가 고금리 사금융에 내몰리는 현실에서 이 숫자들은 작지 않다.

박재동의 25점이 모두 팔린다면, 그 수익은 적어도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에 이른다. 그것이 기금에 더해지면, 몇 명의 예술인이 더 문을 두드릴 수 있게 된다.

이 연대의 이름

박재동은 이번 씨앗페에 출품하면서 특별한 선언을 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작품을 내놓는 것으로 입장을 표명했을 뿐이다.

127명의 작가 중 한 명이 25점을 냈다. 그 25점은 30만 원짜리 아트프린트부터 500만 원대 원화까지 폭넓게 배치됐다. 누구든 하나쯤은 살 수 있는 가격이 있다.

그것이 박재동이 선택한 연대의 방식이다. 붓으로, 색으로, 그리고 숫자로.

박재동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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