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무형문화재 화각장 공방에서 10년을 보낸 뒤, 자신의 민화공예공방 '담몽'을 연 작가. 신예리의 한지 위에는 밤 반딧불과 꽃나비가 함께 걷는다.

'담몽(淡夢)'은 엷은 꿈이다.
신예리는 자신의 민화공예공방에 이 이름을 붙였다. 옅고, 맑고, 천천히 번지는 꿈. 그녀가 한지에 분채를 올리는 속도와, 작업의 결과 닮아 있다.
화각장 공방에서 10년
신예리는 2003년 경원대학교(현 가천대) 섬유미술과를 졸업했다.
그 뒤 10년. 경기무형문화재 화각장 한춘섭화각공예의 수석디자이너로 재직했다. 화각공예(華角工藝)는 소뿔을 얇게 편 각지(角紙)에 그림을 그려 넣고 나무 표면에 붙이는 조선의 전통 공예다. 얇고 반투명한 각지 위에 안료가 스미면, 빛이 통과할 때 독특한 광택이 드러난다. 섬유미술에서 출발해 무형문화재 공방으로 이동한 그녀의 10년은, 전통의 물성을 체득한 시간이었다.
담몽의 시작
화각공예 수석디자이너의 경력을 뒤로하고, 신예리는 민화공예공방 '담몽(淡夢)'을 열었다. 현재 담몽의 대표로 활동하며 대한민국 국가미술특별초대전 초대작가, SNAF 성남아트페어 작가전, 목원회 단체전 등에 참여해왔다.
전통 공방의 장인에서 자신의 이름을 건 작가로 이동하는 일은 단순하지 않다. 공방에서 익힌 기예를 유지하되, 그것을 자기 언어로 다시 꺼내야 한다. '담몽'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 경계의 자리에 있다. 화각의 엷은 광택과 민화의 분채가 한 사람의 손끝에서 만나는 자리.
야형화접도, 책거리, 취도

씨앗페 2026 출품작 세 점은 전부 전통 민화의 도상을 따른다.

야형화접도(夜螢花蝶圖) 는 밤 반딧불이와 꽃, 나비가 함께 등장하는 도상이다. 24×114cm의 긴 가로 화면은 전통 병풍의 한 폭처럼 읽힌다. 먹으로 염색한 한지의 어두운 톤 위에 분채의 빛이 점처럼 피어오른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생명.
책거리는 조선 후기 민화의 대표 장르로, 선비의 서가를 그린 그림이다. 신예리의 책거리는 103.5×68.3cm의 넓은 화면 위에서 조선의 서책 전통을 오늘의 감각으로 풀어낸다.
취도(鷲圖), 곧 독수리 그림은 민화에서 액운을 쫓고 복을 부르는 상징이었다. 화면의 위엄과 매의 눈빛이 분채의 섬세한 터치로 다시 태어난다.
공예와 회화 사이
신예리의 작업은 '민화 공예'라는 이름 안에 함께 있다. 엄격한 장르 구분으로는 민화(회화)와 공예가 다른 영역이지만, 그녀의 담몽에서는 두 자리가 하나로 합쳐진다. 10년의 화각 수석디자이너 경력이 그 통합의 근거다.
염색한지를 먹으로 다시 염색하고, 그 위에 분채를 올리는 공정은 회화의 작업이면서 동시에 공예의 공정이다. 가천대 섬유미술과에서 시작된 섬유적 감각, 화각공예에서 다진 전통 안료와 색의 감각, 그리고 민화의 상징 체계. 세 층위가 한 화면에서 만난다.
씨앗페의 세 점
신예리는 씨앗페에 세 점을 내놓았다.
한국 예술인의 84.9%가 제도 금융에서 배제된다. 씨앗페 출품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이 만드는 상호부조 기금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진다.
전통 민화의 취도(鷲圖)가 액운을 쫓고 복을 불렀듯, 씨앗페의 작품이 누군가의 벽에 걸릴 때 그 벽에는 다른 의미의 복이 찾아온다. 누군가의 작업실 보증금, 누군가의 병원비, 누군가의 다음 전시 도록. 민화의 오래된 기능이 오늘의 상호부조로 옮겨오는 셈이다.
엷은 꿈
'담몽'이라는 이름은 작은 단어지만, 큰 세계를 담는다.
엷은 꿈은 진하지 않아도 오래 간다. 화각의 반투명한 각지 위로 빛이 비치듯, 신예리의 한지 위로 분채의 빛이 스민다. 꿈은 크게 꾸는 것도 중요하지만, 오래 꾸는 것도 그에 못지않다. 씨앗페 2026의 세 점은 그런 꿈의 한 조각이다.
신예리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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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페
발행 2026-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