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 콘텐츠로 이동

거리의 철학자: 민병산과 민병산체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04-08 · 씨앗페

1928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나 1990년 세상을 떠난 민병산은 '거리의 철학자', '한국의 디오게네스'로 불렸다. 그가 평생 벼려낸 '민병산체' 서체와 산문들은 사후 36년이 지난 지금, SAF를 통해 다시 한번 연대의 현장에 선다.

거리의 철학자 — 민병산과 민병산체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통 속에서 살았다. 알렉산더 대왕이 찾아와 원하는 것을 말하라고 했을 때, 그는 딱 한 가지를 요청했다. "햇빛 가리지 말고 비켜서시오." 민병산은 한국에서 그와 가장 닮은 사람으로 불렸다.

청주에서 온 디오게네스

민병산(閔炳山)은 1928년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문필가이자 서예가였다. 하지만 이 두 단어는 그를 온전히 담지 못한다. '거리의 철학자'라는 별명이 더 정확할 수 있다.

그가 세속을 초월한 삶을 살았다는 말은 단순한 수식이 아니다. 실제로 그는 물질적 풍요를 거부했다. 지위나 명예에 집착하지 않았다. 글을 썼고, 붓을 들었고, 그것으로 충분했다.

1990년 세상을 떠났다. 62세. 충분히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살아있는 동안 충분히 자기답게 살았다.

민병산체, 한 사람의 이름이 붙은 서체

서체에 사람 이름이 붙는 경우는 드물다. 특정 서체 양식이 한 개인의 이름과 동일시될 만큼 독창적이어야 하고, 그 독창성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아야 한다.

민병산체는 그런 서체다. 자유분방하다. 규범을 따르지 않는다. 전통 서예의 법도에서 벗어나 있지만, 그 일탈이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선택에서 비롯된 것임을 필획(筆劃) 하나하나가 증명한다.

흔히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은 오래된 법첩(法帖)을 따라 쓰는 데서 시작한다. 왕희지나 안진경, 구양순 같은 중국 대가들의 획을 수만 번 모방하며 손에 익힌다. 그렇게 전통을 몸에 새긴 다음에야 비로소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이 서예 교육의 정통 노선이다.

민병산은 그 노선에서 훨씬 멀리 벗어나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의 글씨에는 무게가 있다. 배운 사람의 자유분방함이 아닌, 생각하는 사람의 자유분방함이다.

《철학의 즐거움》과 산문의 세계

민병산은 서예가이기 전에 문필가였다. 산문집 《철학의 즐거움》이 대표적이다. 제목부터가 역설적이다. 철학은 대개 어렵고 무거운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것이 즐겁다니.

하지만 민병산의 글을 읽어본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인다. 그의 산문은 어렵지 않다. 철학적 개념들을 학문의 언어로 설명하지 않고, 삶의 언어로 풀어낸다. 어렵게 쓰는 것이 지식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을 그는 글로 보여주었다.

"자유분방한 삶과 독특한 '민병산체' 서체, 그리고 '철학의 즐거움' 같은 산문집으로 알려져 있으며, 세속을 초월한 삶을 실천했던 예술가다."

서예와 산문. 이 두 가지가 그에게서는 분리되지 않는다. 글씨를 쓰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이 본질적으로 같은 행위이기 때문이다. 생각을 형태로 만드는 일. 정신을 물질로 변환하는 일.

세속을 초월한다는 것

'세속을 초월한 삶'이라는 표현은 오해를 부를 수 있다. 세상에서 도망친다는 뜻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병산이 보여준 것은 도피가 아니라 다른 척도로 살기였다.

돈이 없어도 괜찮다. 이름이 알려지지 않아도 괜찮다. 좋은 위치에 있지 않아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자기 생각을 정직하게 붓끝에 담고 있느냐이다.

이것은 말로는 쉬운데 실제로 살기는 어렵다. 민병산은 그것을 실제로 살았다. 그것이 그를 '철학자'로 만든다.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는 뜻에서.

SAF 2026의 출품작

SAF 2026에 민병산의 작품 한 점이 출품되었다. 《수하석상(樹下石像)》. 나무 아래 돌 형상이라는 뜻이다.

재료: 종이에 먹. 크기: 135.3x24cm. 제작: 1986년. 가격: 5,000,000원.

가늘고 긴 형식이 눈에 띈다. 세로로 긴 화면은 전통 서예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135.3cm의 길이. 종이 위에 먹으로 새긴 돌부처 또는 돌상의 형태. 민병산체가 그 안에 있을 것이다.

1986년이면 그가 세상을 떠나기 4년 전의 작업이다. 말년의 작품이다. 자유분방함이 더욱 원숙해진 시기.

민병산, 〈수하석상〉, 1986, 종이에 먹
민병산, 〈수하석상〉, 1986, 종이에 먹

사후 36년, 연대의 현장에 서다

민병산은 1990년에 세상을 떠났다. 지금은 2026년이다. 36년이 지났다.

그 사이 한국 예술계는 많이 달라졌다.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예술로 먹고사는 것의 어려움. 창작자에게 적용되는 다른 기준들. 금융 접근성의 문제. 이것들은 민병산이 살던 시절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다.

SAF(씨앗페)는 이 구조적 문제에 맞서는 프로젝트다. 출품 작가들이 자발적으로 작품을 내놓고, 판매 수익이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들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지는 방식. 연대의 작동 원리다.

민병산은 여기에 그의 작품으로 참여한다. 살아서가 아니라 작품이 살아남아서. 그것도 하나의 연대 방식이다. 디오게네스는 통 속에 살았지만 그의 생각은 2천 년 넘게 살아남았다. 민병산체는 그 필획 속에 생각을 새겼다. 생각은 쉽게 죽지 않는다.

붓을 들고 먹을 갈고 종이 위에 획을 긋는 일. 그것이 전부였고, 그것이 충분했다. 거리의 철학자는 그렇게 자기 방식으로 세상에 남았다.

민병산의 작품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을 소개합니다:

민병산 작가의 출품작 전체 보기 →

관련 매거진

같은 길을 걷는 작가들

작품 구매 가이드

씨앗페

발행 2026-04-08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