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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를 만난 화가: 강석태의 세계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04-08 · 씨앗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를 처음 만난 뒤, 강석태는 30년 넘게 같은 질문을 묻고 있다. 어른이 되면 잃어버리는 것들은 무엇인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과 주한프랑스문화원이 소장한 그의 작품들이, 이번 SAF 2026에는 15점이나 자리를 잡았다.

어린 왕자를 만난 화가 — 강석태의 세계

별 B-612. 어린 왕자가 살았던 작은 행성의 번호다. 한 화가가 그 번호를 수십 년 동안 가슴에 새기고 살았다면, 그 화가의 세계는 어떤 모양일까.

어린 왕자를 만난 순간

강석태는 생텍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에서 영감을 받아 작업을 시작했다. 이 설명은 단순해 보이지만, 사실 굉장히 까다로운 과제를 스스로에게 부여한 것이다.

《어린 왕자》는 어린이를 위한 책이 아니다. 아니, 어린이를 위한 척하는 어른을 위한 책이다. "어른들은 언제나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텍쥐페리는 썼다. 보아뱀 그림을 모자라고 보는 어른들, 숫자로만 사람을 이해하는 어른들. 그 어른들에게 던지는 질문이 이 소설의 핵심이다.

그 질문을 그림으로 번역하는 것. 쉽지 않다. 텍스트를 삽화로 옮기는 것과는 다른 일이다. 소설이 품은 감각, 즉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감각을 시각 언어로 전달해야 한다.

아크릴과 장지가 만드는 세계

강석태의 화면을 보면 재료가 눈에 들어온다. 장지(壯紙)에 먹과 채색.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두 가지 물성이 교차한다.

장지는 한지의 일종으로, 두꺼운 한국 전통 종이다. 여기에 먹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채색을 올리면, 서양의 캔버스 회화와는 다른 질감이 생긴다. 색이 스며들고 번진다. 경계가 흐려진다. 이 흐림이 강석태의 작품에서 몽환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비결 중 하나다.

아크릴 작품들은 더 선명하다. 색이 단호하고, 형태가 뚜렷하다. 어린 왕자의 외로움과 순수함이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고 똑바로 서 있다.

강석태, 〈나의 어린왕자〉, 2025, 캔버스에 아크릴, 45×45cm
강석태, 〈나의 어린왕자〉, 2025, 캔버스에 아크릴, 45×45cm

작품들이 펼치는 서사

SAF 2026에 출품된 15점의 제목들을 보면 강석태가 어린 왕자의 세계에서 어떤 장면들을 골라냈는지 알 수 있다.

강석태, 〈어린 왕자_꽃〉, 2025, 장지에 아크릴 채색, 45x45cm
강석태, 〈어린 왕자_꽃〉, 2025, 장지에 아크릴 채색, 45x45cm
강석태, 〈내겐 세 개의 무서운 가시가 있지〉, 2023,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45x45cm
강석태, 〈내겐 세 개의 무서운 가시가 있지〉, 2023, 캔버스에 아크릴채색, 45x45cm
강석태, 〈4시의 행복한 여우〉, 2025, 장지에 아크릴 채색, 40.9x31.8cm
강석태, 〈4시의 행복한 여우〉, 2025, 장지에 아크릴 채색, 40.9x31.8cm
강석태, 〈구름을 타고 오다.〉, 2019, 장지에 아크릴 채색, 116x91cm
강석태, 〈구름을 타고 오다.〉, 2019, 장지에 아크릴 채색, 116x91cm

여우와의 대화, 장미와의 이별, 별들 사이의 고독. 소설의 핵심 장면들이 각기 다른 화면 위에서 새로운 삶을 얻는다.

"작품 속 어린 왕자가 만나는 풍경과 재해석된 서사를 통해 감성과 위로를 전해주는 작품."

강석태, 〈별 밤의 어린 왕자〉, 2021, 캔버스에 아크릴, 65.1×53cm
강석태, 〈별 밤의 어린 왕자〉, 2021, 캔버스에 아크릴, 65.1×53cm

21회 개인전이 증명하는 것

강석태는 21회의 개인전과 200여 회의 단체전을 치렀다. 숫자 자체가 하나의 증언이다. 같은 주제로 200회 이상의 전시를 지속한다는 것은, 그 주제가 소진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린 왕자》는 1943년에 출판되었다. 80년이 넘었다. 그런데 왜 아직도 읽히는가. 질문이 낡지 않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면서 잃어버리는 것들에 대한 질문은 어느 시대에도 유효하다. 강석태가 같은 주제를 계속 파고드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저서도 있다. 《어린 왕자에게 말을 걸다》.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부족해서, 언어로도 그 세계를 붙들려 한 흔적이다.

소장처들이 말하는 것

강석태 작품의 소장처 목록은 독특하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주한프랑스문화원. 한국예술종합학교. 넥슨어린이재활병원. 순천 기적의 도서관. 푸르메재단. 창원 한마음병원.

미술관과 문화 기관뿐 아니라 병원과 도서관이 눈에 띈다. 어린 왕자의 세계를 담은 그림이 어린이 재활 병원 벽에 걸린다. 치료받는 아이들, 그 곁을 지키는 부모들. 그 공간에서 강석태의 그림은 미적 감상의 대상을 넘어선다.

주한프랑스문화원의 소장은 또 다른 의미를 지닌다. 생텍쥐페리가 프랑스 작가라는 것을 생각하면, 프랑스 문화 기관이 그의 소설에서 영감받은 한국 화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은 일종의 완결처럼 느껴진다.

SAF와의 만남

강석태가 SAF 2026에 15점을 출품했다. 참여 작가 중 세 번째로 많은 숫자다. 많이 낸다는 것은 많이 걸었다는 뜻이다.

동료 예술인들의 금융 차별 문제에 연대하기 위해 작품을 내놓는 것. 어린 왕자의 언어로 말하자면, '길들여지는 것'의 반대편에 서는 일이다. 책임지는 관계를 선택하는 일. 보이지 않지만 중요한 것을 위해 시간을 쓰는 일.

강석태, 〈어린왕자가 머물던 풍경_제주 일기〉, 2021, 장지에 먹과 채색, 91×72.7cm
강석태, 〈어린왕자가 머물던 풍경_제주 일기〉, 2021, 장지에 먹과 채색, 91×72.7cm

별 B-612에서 온 왕자는 결국 자기 장미에게로 돌아갔다. 강석태는 30년 넘게 그 귀환의 순간을 그리고 있다.

강석태의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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