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의 철학자,
글씨로 남은 삶
가진 것 없이, 지위를 구하지 않고, 제 길을 걸었다.그가 남긴 것은 한 자루의 글씨, 한 권의 산문, 그리고 한 사람의 자세였다.
세속을 초월한 삶 —
글씨의 형상으로 새겨지다
민병산(閔炳山, 1928–1990)은 충북 청주에서 태어났다. 문필가이자 서예가였던 그는 평범한 약력에 담기지 않는 두 개의 별칭으로 당대에 불렸다 — ‘거리의 철학자’, 그리고 ‘한국의 디오게네스’.
그 이름들은 치레가 아니라 묘사였다. 그가 견주어진 그리스의 견유(犬儒)처럼, 그는 소박하고 자유롭게 살았으며 세속의 야망과 소유와 지위로부터 자신을 떼어 놓았다. 벼슬도 재물도 구하지 않았고, 학식을 과시할 자격이 아니라 살아가는 방식으로 가볍게 지녔다.
그런 삶에서 한 묶음의 글과, 그만의 글씨가 나왔다. 그의 산문은 산문집 『철학의 즐거움』에 모였다. 거기서 사유는 교리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일상의 결에 가까이 건네졌다. 그리고 그의 붓은 이름을 그대로 가져갈 만큼 독특한 글씨를 낳았으니 — ‘민병산체’, 그것을 쓴 사람과 똑같이 서두르지 않고 꾸미지 않는 기질을 품은 글자였다.
그는 당대의 거리와 찻집에 모이던 문인·예술가의 세계에 속해 있었고, 그 곁의 문인들 사이의 한 풍경이었다. 그곳에서 그의 글씨는 상품이라기보다 우정과 존경의 표시로 청해지고 손에서 손으로 건네졌다.
민병산은 1990년에 작고했다. 그는 자신이 가장 아낀 것 — 글자의 형상과 문장의 단정함 — 외에 다른 기념비를 남기지 않았다. 그 안에는 소박하게, 자유롭게, 제 뜻대로 살 수 있음을 증명한 한 삶의 울림이 남아 있다.
그가 기려지는 것들
- 1
거리의 철학자
‘한국의 디오게네스’로 불린 삶. 지위도 소유도 구하지 않은 자유로운 초월의 자세가, 그 자체로 하나의 사유였다.
- 2
민병산체 — 그만의 글씨
제 이름을 그대로 가져갈 만큼 독특한 서체. 서두르지 않고 꾸미지 않는 글자가 곧 그 사람의 기질이었다.
- 3
산문 — 『철학의 즐거움』
사유를 교리가 아니라 즐거움으로, 일상의 결에 가까이 건넨 글. 그 산문이 산문집에 모였다.
한 사람의 시간
- 1928충북 청주 출생.
- —문필가·서예가로 살며 ‘거리의 철학자’, ‘한국의 디오게네스’로 불리다.
- —독특한 ‘민병산체’ 서체를 이루고, 당대 문인들 사이의 한 풍경이 되다.
- —산문을 산문집 『철학의 즐거움』에 모으다.
- 1990글씨와 글을 남기고 작고하다.
매체와 무대
- 매체: 서예와 문필 — 캔버스가 아니라 한 자루의 글씨와 한 묶음의 산문.
- 무대: 그의 글씨가 동료 문인들 사이에서 손에서 손으로 건네지던 당대 문인·예술의 세계.
- 유산: ‘민병산체’와 『철학의 즐거움』 — 자유롭게 살아간 한 삶의 울림,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이어 가는 것.
세 편의 에세이 —
한 삶과 한 글씨, 그리고 남는 것에 관하여
1거리의 철학자 — 삶으로서의 사유
민병산에게 붙은 별칭 — ‘거리의 철학자’, ‘한국의 디오게네스’ — 는 직업이라기보다 하나의 자세를 가리킨다. 고대의 견유 디오게네스는 가진 것이 거의 없고 누구에게도 매이지 않았으며, 세속의 지위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사람으로 기억된다. 한 현대 한국 문인을 그 이름으로 부른다는 것은, 그 역시 야망의 통상적 셈법 바깥으로 의도적으로 걸어 나갔다는 뜻이었다.
그는 벼슬을 구하지 않았고 재물을 쌓지 않았다. 소박하게, 자유롭게, 제 뜻대로 살았으며, 적지 않은 학식을 가볍게 지녔다. 그에게 철학은 강단에서 표방되는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존재 방식이었다 — 살갗에 가까이 입은 사유, 한 사람이 도시를 걷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식 속에서 실천되는 것.
그래서 그 별칭이 들어맞았다. 그는 의자에 앉아 강의하지 않았다. 그저 거기, 거리에 있었다 — 당대 사람들 사이에 있던 사유하는 존재로. 철학이 곧 삶이었고, 삶은 열린 데서 살아졌다.
2민병산체 — 이름을 가진 글씨
한 사람의 글씨가 그 사람의 이름을 그대로 가져갈 만큼 또렷해지는 일은 드물다. 민병산의 서예가 바로 그러했으니 — ‘민병산체’가 그것이다. 글씨가 이름을 갖는 것은, 그것이 누구의 것으로도 오인될 수 없는 제 기질과 성격을 지닐 때뿐이다.
그의 글자는 그의 삶과 같은 성질을 품었다 — 서두르지 않고, 꾸미지 않으며, 인상을 남기려는 욕심이 없는. 서예는 가장 정직한 예술에 든다. 붓은 그것을 쥔 이의 호흡과 자세를 기록하고, 단 하나의 그어진 획에는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 그의 글자에서는 굳이 연기할 필요가 없었던 한 사람의 단정함이 읽힌다.
그의 곁에 모이던 문인·예술가들 사이에서 그의 글씨는 청해지고 오갔다 — 사들인 물건이라기보다 벗들 사이의 존경의 표시로 건네졌다. 그의 글씨를 받는다는 것은 곧 그 사람 자신의 흔적을 받는 일이었다.
3남는 것 — 자유롭게 산 삶의 울림
민병산은 1990년에 작고했다. 그는 어떤 기관도 세우지 않았고 재산도 모으지 않았다. 그가 남긴 것은 그가 가장 아낀 것이었다 — 글자의 형상과 문장의 단정함. 그것은 『철학의 즐거움』에 모였고, 여러 손을 거쳐 간 글씨에 담겼다.
그것은 조용한, 그러나 오래가는 유산이다. 소박하고 자유롭게 살아간 한 삶은 그것을 산 사람보다 오래 남는 하나의 주장을 한다 — 잘 살기 위해 지위나 소유를 좇을 필요가 없다는 것, 사유가 직업이 아니라 일상의 실천일 수 있다는 것, 사람은 무엇을 쌓았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있었는가로 기억될 수 있다는 것.
그를 알던 이들은 그를 기억했고, 그 뒤에 온 이들은 그의 글씨를 통해 그를 만났다. 가진 것으로 값을 매기는 시대에, 거리의 철학자는 먹으로 쓰인 하나의 반례로 남는다 — 자유롭게 택한 삶이 그 나름의 울림을 남긴다는 증거로.
거리에서 『철학의 즐거움』의 한 페이지까지, 민병산의 삶은 하나의 확신을 추구했다 — 소박하게, 자유롭게, 제 뜻대로 살 수 있으며, 그런 삶이 그 자체로 하나의 사유라는 확신. 민병산은 1990년 작고했다. 그의 글은 그가 남긴 유산으로서 씨앗페에 함께하며, 그가 평생 지켜 낸 자유롭고 초연한 정신은 이곳에서 동료·후배 예술인을 위한 상호부조의 뜻으로 이어진다.
주요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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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병산 작가는 1990년 작고했습니다. 그의 글은 그가 남긴 유산으로서 씨앗페에 함께하며, 작품 판매 수익의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이어집니다. 그가 평생 지켜 낸 자유롭고 초연한 정신이,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 한 사람의 다음 한 달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