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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끝으로 시대를 새긴 작가: 오윤 40주기 특별전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04-07 · 씨앗페

1986년 마흔 한 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판화가 오윤. 그가 나무판 위에 새긴 민중의 춤사위는 40년이 지난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 씨앗페 2026에 출품된 사후판화 18점은, 그의 예술이 동료 예술인의 금융 안전망으로 다시 태어나는 역설적이고도 아름다운 순간을 만들어낸다.

오영수의 아들이 칼을 들었을 때

소설 《갯마을》로 한국 문학사에 이름을 새긴 오영수. 그 아들이 나무판 앞에서 조각칼을 들었을 때, 아무도 그것이 한국 미술사를 바꿀 한 획이 될 줄 몰랐다.

오윤(1945~1986)은 서울대학교 조소과에서 서구 미학을 익혔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반대 방향을 향했다. 박물관 유리 뒤의 예술이 아니라, 공장 담벼락과 골목에서 숨 쉬는 예술. 그는 그걸 찾아 목판화로 왔다.

목판화는 단순한 기법이 아니다. 한 번의 칼질은 되돌릴 수 없다. 깎아낸 자리는 흰 여백이 되고, 남긴 자리는 검은 형상이 된다. 그 투박하고 결연한 성질이 오윤의 예술 정신과 딱 맞았다.

한(恨)과 신명 사이

오윤의 판화 속 인물들을 보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 그들은 절대로 약하지 않다.

굵고 거친 선으로 그려진 몸짓들, 어깨를 들썩이는 춤사위들. 억눌린 현실을 딛고 일어서는 생명력이 화면 밖으로 튀어나오는 것 같다. 〈칼노래〉의 날카로운 긴장감, 〈낮도깨비〉의 유머 섞인 풍자, 〈남녁땅뱃노래〉의 장쾌한 리듬감. 그는 한국인의 심층에 깔린 '한(恨)'을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그것을 단숨에 터뜨리는 '신명'의 에너지를 포착했다.

탈춤, 무속, 도깨비. 서구 미술에 물든 화단이 외면하던 소재들이었다. 오윤은 그것들을 정면으로 끌어들여 한국적 원형을 되물었다.

"미술은 많은 사람이 나누어야 한다."

이 신념은 말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판화를 시집 표지에, 노동 현장 전단지에 아낌없이 내어주었다. 돈을 받지 않고. 유명세를 고집하지 않고. 그것이 그에게 예술의 공공성이었다.

오윤, 〈낮도깨비〉, 1985, 목판, 54.5×36cm
오윤, 〈낮도깨비〉, 1985, 목판, 54.5×36cm

판화가 가진 복수성의 미학

판화는 하나의 원판에서 여러 장을 찍어낼 수 있다. 이것을 '복수성(複數性)'이라 부른다. 유화나 조각처럼 단 하나뿐인 작품과는 다르다.

오윤에게 이 복수성은 단순한 기술적 특징이 아니었다. 예술이 소수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의 신념과 정확히 맞닿은 속성이었다. 하나의 판화는 여러 사람의 손에 닿을 수 있다. 노동자의 손에, 학생의 손에, 그리고 40년 뒤 낯선 누군가의 손에. 씨앗페가 소장한 오윤의 출품작 전체는 오윤 작가 갤러리에서 볼 수 있다.

1982년에 새긴 〈춤2〉, 1983년의 〈봄의소리1〉, 1984년의 〈귀향〉〈지리산2〉. 1985년에 쏟아진 〈칼노래〉 〈남녁땅뱃노래〉 〈낮도깨비〉 〈팔엽일화〉. 그는 1986년 세상을 떠나기 불과 한 해 전까지 손을 멈추지 않았다. 간경화는 마흔 한 살의 그를 데려갔지만, 나무판에 새긴 형상들은 남았다.

오윤, 〈지리산2〉, 1984, 목판, 24.4×34cm
오윤, 〈지리산2〉, 1984, 목판, 24.4×34cm

타계 40년 뒤, 사후판화 18점의 귀환

오윤이 세상을 떠난 지 정확히 40년이 되는 2026년. 그의 작품 18점이 씨앗페(SAF) 2026 온라인 갤러리에 나왔다.

모두 사후판화다. 작가의 유족과 관련 기관의 협력으로 원판에서 다시 찍어낸 작품들이다. 〈형님〉(1984) 〈석양〉(1982) 〈무호도〉(1985) 〈검은새〉(1980) 등 오윤 예술 세계의 핵심을 이루는 작품들이 110만 원에서 295만 원 사이의 가격으로 걸렸다.

여기에 깊은 아이러니가 있다. 오윤은 자신의 예술을 시장 밖으로 기꺼이 풀어놓은 작가였다. 그런 그의 작품이 지금 시장에 나와 있다. 그 판매 수익이 상호부조 기금으로 흘러들고, 금융 배제를 겪는 동료 예술인에게 연 5% 저금리 대출로 이어진다.

그의 작품이 또 한 번 나누어지고 있다. 형태는 달라졌지만, 정신은 같다.

40년 전 그가 새긴 것

오윤이 작업하던 1980년대는 독재의 그늘이 짙었다. 그의 칼끝이 향했던 곳은 그 그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억눌린 이들,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이들, 춤추고 노래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던 이들.

그는 그들의 몸짓을 나무 위에 새겼다. 검정과 흰색만으로. 복잡한 색도 없이. 하지만 그 단순함 속에 시대의 모든 무게가 담겼다.

지금 우리가 사는 2026년은 어떤가. 기술은 화려해졌고 삶은 풍요로워 보인다. 그러나 한국 예술인의 84.9%가 제도권 금융에서 배제된다는 통계는 달라지지 않았다. 48.6%가 고금리 대출에 내몰린다. 이것은 특정 작가의 사정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예술인에게 구조적으로 부과한 불평등이다.

오윤은 그런 불평등을 견디면서도 자신의 예술을 나누었다. 그 정신이 40년이 지난 지금, 씨앗페라는 형태로 다시 살아있다.

한 번의 칼질, 영원한 흔적

목판화의 칼자국은 지워지지 않는다. 오윤이 1985년 마지막 해에 집중적으로 작업한 흔적들, 즉 〈춘무인추무의〉의 계절적 순환, 〈소리꾼1〉의 역동적 호흡, 〈징2〉의 울림 있는 타격감이 오늘날 우리 앞에 그대로 놓여 있다.

오윤, 〈춘무인추무의〉, 1985, 목판, 65.5×48cm
오윤, 〈춘무인추무의〉, 1985, 목판, 65.5×48cm

이 작품들을 구매하는 행위는 단순한 소장이 아니다. 오윤이 "나누어야 한다"고 했던 예술의 공공성에 동참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매가 만들어내는 기금은, 지금 이 순간 금융 문 앞에서 돌아서야 하는 예술인에게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준다.

마흔 한 살에 세상을 떠난 작가. 그가 남긴 칼자국들은 40년이 지나도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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