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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화에서 AI 디자인으로: 박지혜의 교차하는 박사과정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04-20 · 씨앗페

프랑스에서 순수미술을 배우고 홍대 회화과 박사를 마친 작가. 박지혜는 2024년부터 국민대 AI디자인 랩에서 또 한 번의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박지혜, 〈기억・속도・정보의 교차〉, 2025, Digital print, 60x60cm
박지혜, 〈기억・속도・정보의 교차〉, 2025, Digital print, 60x60cm

박지혜는 박사학위 두 개를 향해 동시에 걷는 작가다.

2015년부터 2025년까지,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Ph.D. in Fine Arts). 그리고 박사를 마치기 한 해 전인 2024년 3월, 그녀는 국민대학교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 AI디자인 랩의 박사과정에 다시 입학했다. 현재 Ph.D. Candidate.

회화와 AI 디자인. 붓과 알고리즘이 한 사람의 연구 이력 안에서 겹쳐진다. 씨앗페 2026 출품작의 제목이 〈기억・속도・정보의 교차〉인 것은 이 겹침을 직접 말하는 듯하다.

르아브르-루앙에서 홍대로

박지혜의 학문적 이력은 프랑스에서 시작된다.

2007년 9월부터 2010년 6월까지 프랑스 L'ÉCOLE SUPÉRIEURE D'ART ET DESIGN LE HAVRE-ROUEN에서 순수미술을 전공하고 학사(DNAP, Bachelor)를 받았다. 르아브르는 인상주의 화가들이 오랫동안 머물던 항구도시. 작가는 그곳에서 회화의 기초를 다졌다.

귀국 후 홍익대학교 일반대학원 회화과 석사(M.F.A., 2013-2015)를 마치고, 같은 학교 박사과정에 진학했다(2015-2025). 박사학위 취득 직전인 2024년부터는 국민대 테크노디자인전문대학원에서 두 번째 박사과정을 동시에 진행 중이다.

파리, 대전, 홍대

프랑스 체류기에는 프랑스 내 다양한 공간에서 작업을 발표했다. 2008·2009·2010년 ESAH Gallery(프랑스)에서 페인팅·설치·영상 작업을 선보였다. 2009년 프랑스 Theater France 《Bouger》, 2010년 Jardin suspendu au Havre 《Art and Nature》(설치), 2009-2010년 건축가 Jean Louis와의 워크숍 《Art, Architecture with nature》.

귀국 후 한국에서의 개인전도 이어진다.

  • 2013·2014 《Passing》, 《Passage》(갤러리 세븐,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 2013·2015 《아트 서울》, 《아트앤 라이프쇼》(예술의 전당, aT센터)
  • 2014 석사학위청구전(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 2014 《Passing》 아트서울(한가람미술관)
  • 2024 《시각적 대화》(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그룹전도 꾸준하다. 2024년 세종문화회관 《아시아청년작가전 80인》, 2024년 《헤럴드 아케이드 15(12인)》(헤럴드옥션), 2023년 《하남 프린지 아트 페어》, 2025년 《Reloaded》(답십리아트랩, 한국미디어아트협회).

그리고, 지우고, 쌓는

작가의 작업 설명이다.

"대상을 그리고, 지우고, 쌓는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우연적이거나 의도적으로 나타나는 형상을 찾아내고, 이를 본인의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방법을 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분할된 화면과 캔버스 사이의 물리적 틈은 작품에 고유한 시각적 경험을 가능하게 하며, 작품의 의미가 고정되지 않고 유동적으로 생성됨을 전제로 한다. 작품은 특정 의미에 묶이지 않고, 새로운 형식과 의미가 끊임없이 순환하며 재구성되는 열린 가능성을 지향한다."

'그리고, 지우고, 쌓는다.' 이 세 동사가 박지혜 작업의 문법이다. AI 디자인 연구로 옮겨간 뒤에도 이 문법은 유지된다. 다만 이제 '쌓는' 자리에 알고리즘과 데이터가 함께 올라간다.

발의 이미지, 움직임의 기록

"초기 작업에서는 대상의 고정된 의미가 없음을 사람들의 움직임을 통해 표현하였다. 그러나 현재는 '발' 이미지를 통해 이 개념을 탐구한다."

사람의 움직임에서 '발'로 좁혀지는 시선. 몸 전체가 아니라 땅과 맞닿는 부분만 남기는 축소. 그 축소가 오히려 의미의 열린 가능성을 드러낸다는 역설. 디지털 프린트라는 매체의 선택도 그 흐름 안에서 자연스럽다.

y&b drawing

박지혜, 〈y&b drawing〉, 2025, Digital print, 40x60cm
박지혜, 〈y&b drawing〉, 2025, Digital print, 40x60cm
〈y&b drawing〉 — 노랑과 파랑의 드로잉

씨앗페 2026 출품작은 두 점이다.

제목 〈기억・속도・정보의 교차〉는 그대로 박지혜의 이중 박사과정을 요약한다. 회화가 다루는 '기억', 디지털 세계가 요구하는 '속도', AI 디자인이 처리하는 '정보'. 세 개념이 교차하는 자리가 바로 작가의 현재다. 〈y&b drawing〉은 그보다 간결하다. y(yellow)와 b(blue). 두 원색의 드로잉.

두 번의 박사과정, 하나의 연대

한국 예술인의 84.9%가 제도 금융에서 배제된다. 씨앗페 출품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이 만드는 상호부조 기금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진다.

박사과정을 두 번 밟는다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자원을 요구한다. 그 긴 학문의 시간 동안 작가는 여전히 작가로 살아가야 한다. 씨앗페의 기금은 학위와 작업 사이의 긴 시간을 버텨야 하는 예술인의 생계를 조금씩 떠받친다. 박지혜가 씨앗페에 두 점을 내놓는 것은, 그 기나긴 시간의 연대를 자신이 먼저 선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교차점에서

회화에서 AI 디자인으로 가는 길,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길, 캔버스에서 디지털 프린트로 이동하는 길.

박지혜의 이력은 여러 교차점 위에 있다. 그 교차점에서 그녀가 계속 '그리고, 지우고, 쌓는' 행위를 반복한다는 사실이, 어쩌면 가장 본질적인 작업의 증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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