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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떨어져 흙이 되다, 일체유심조: 정금희의 花落以土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04-20 · 씨앗페

홍익대 사진학 박사이자 부산 기반의 사진가. 정금희는 동해선의 옛 역사부터 꽃과 흙의 순환까지, 일체유심조의 시선으로 부산·울산·경남의 풍경을 담아왔다.

정금희, 〈화락이토花落以土 #15〉, 2018, Archival pigment print, 60x90cm
정금희, 〈화락이토花落以土 #15〉, 2018, Archival pigment print, 60x90cm

花落以土(화락이토) — 꽃이 떨어져 흙이 된다.

정금희의 사진은 이 네 글자의 제목을 10년 이상 반복해 사용한다. 꽃이 피고, 지고,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 그녀의 카메라가 붙잡는 것은 꽃의 절정만이 아니라, 그 절정이 다시 흙으로 되돌아가는 시간이다.

일체유심조, 사진의 창작론

작가는 자신의 작업 옆에 이렇게 적는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는 가시적이든 비가시적이든 세상 모든 현상과 법칙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이란 뜻으로, 불교 유심론의 대표적인 표제어다. 만물은 정신의 산물로 보는 관점을 지닌 세계관으로, 사진을 포함한 모든 예술에서 창작자의 의지, 또는 정신에 의해 작품이 발현되는 과정은 일체유심조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환경에서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더라도, 생리적·의식적 시선이 다른 작가 시선에 따라…"

일체유심조는 원효대사의 깨달음에 등장하는 구절로도 유명하다. 정금희는 이 불교적 세계관을 사진 이론에 포개어 자신의 창작론으로 삼는다. 같은 풍경을 찍어도 작가의 마음이 다르면 다른 사진이 나온다. 카메라는 광학 장치 이전에 '마음의 장치'라는 관점.

홍대 사진학 박사, 부산의 사진가

정금희는 홍익대학교 대학원 디자인공예학과 사진학전공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사진 장르에서 박사학위 취득은 드문 일. 이론적 기반과 실기 작업을 동시에 오랜 시간 다져온 작가라는 뜻이다.

활동의 축은 부산이다. 개인전 7회 중 5회가 부산·진주 등 영남권에서 열렸다.

  • 2011 《BEYOND》, 공근혜 갤러리, 서울
  • 2012 《BEYOND》, 토요타포토스페이스, 부산
  • 2017 《오늘의 날씨》, 갤러리 수정, 부산
  • 2018 《화락이토(花落以土)》, 부산 프랑스문화원 ART SPACE
  • 2022 《동해선 — 역사(驛舍), 역사(歷史)》, 부산 프랑스문화원 ART SPACE
  • 2023 《동해선 — 역사(驛舍), 역사(歷史)》, 갤러리 루시다, 진주
  • 2025 《화락이토(花落以土)》, 부산갤러리

동해선의 역과 역사

주목할 만한 시리즈는 《동해선 — 역사(驛舍), 역사(歷史)》다. 두 개의 '역사'가 제목 안에 겹쳐진다. 하나는 기차역의 건물을 뜻하는 驛舍, 다른 하나는 시간의 기록을 뜻하는 歷史.

동해선은 부산에서 울산·포항을 거쳐 올라가는 철도 노선이다. 근대화와 함께 지어진 역사(驛舍)들이 교체되고 철거되는 중이다. 정금희는 그 과정을 사진으로 기록한다. 사라지는 건축물이 한 시대의 역사가 되는 자리. 철도의 역(驛)이 시간의 역(歷)이 되는 순간.

2011년 첫 서울 개인전 《BEYOND》가 공근혜 갤러리에서 열렸다는 것도 작가의 위치를 알려준다. 한국 사진 현장의 주요 갤러리에서 일찍이 인정받은 사진가다.

60여 회의 단체전

2025년 한 해의 단체전 목록만 봐도 그녀의 활동량이 가늠된다.

  • 《기억은 오래된 이야기》, 금샘미술관, 부산
  • 《우리들의 헤테로토피아》, 갤러리 탄, 대전
  • 《부산·울산·경남 사진교류전: 기억의 잔상》, 부산시청 갤러리

그 외 60여 회.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사진 현장을 축으로 삼으면서도, 대전·서울로 활동 반경을 넓혀가는 중이다.

두 권의 사진집, 류가헌

작가는 서울의 사진 전문 출판사 류가헌에서 두 권의 사진집을 냈다.

  • 2011 《BEYOND》, 류가헌
  • 2024 《화락이토(花落以土)》, 류가헌

13년의 간격을 두고 두 권의 책이 한 출판사에서 나왔다. 작가와 출판사의 오랜 동행. 사진이 책이라는 형식 안에 고정될 때 얻는 안정감이 거기에 있다.

두 점의 화락이토

정금희, 〈화락이토花落以土 #16〉, 2018, Archival pigment print, 60x90cm
정금희, 〈화락이토花落以土 #16〉, 2018, Archival pigment print, 60x90cm
〈화락이토 #16〉 — 꽃과 흙의 순환

씨앗페 2026 출품작 두 점은 2018년 화락이토 시리즈다.

#15와 #16은 연속된 번호다. 한 시리즈의 이웃한 두 장면이 함께 걸릴 때, 꽃에서 흙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이 나란히 보이게 된다.

꽃에서 흙으로, 흙에서 기금으로

한국 예술인의 84.9%가 제도 금융에서 배제된다. 씨앗페 출품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이 만드는 상호부조 기금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진다.

꽃이 떨어져 흙이 된다는 정금희의 제목은, 씨앗페가 '씨앗'을 이름에 품은 것과 정확히 짝을 이룬다. 꽃이 흙이 되고, 흙이 다시 씨앗을 품는다. 씨앗이 자라 또 다른 꽃이 된다. 한 작가의 사진이 한 점의 작품이 되고, 그 작품의 판매가 다른 작가의 작업실이 되고, 그 작업실에서 다음 씨앗이 자란다.

일체유심조의 연대

마음이 만물을 만든다는 불교의 관점은, 거꾸로 보면 '세계는 공동의 마음이 만드는 자리'라는 뜻도 된다.

정금희의 두 점이 누군가의 벽에 걸리고, 그 집 주인의 마음이 달라지고, 작가의 통장에 잔액이 들어가고, 다른 작가의 월세가 해결된다. 마음이 물질을 움직이고, 물질이 다시 마음을 움직이는 자리. 씨앗페 2026은 일체유심조의 한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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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 2026-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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