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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일빌딩에서 무등을 바라보며: 박성완의 광주

작가를 만나다 · 발행 2026-04-20 · 씨앗페

광주와 전남을 삶의 토대로 삼은 작가. 대인시장의 놀이, 전일빌딩의 석양, 마을의 정미소 — 박성완은 주변의 사소한 순간에서 시대의 감각을 길어 올린다.

박성완, 〈대인시장놀〉, 2019, Oil on canvas, 45.5x53cm
박성완, 〈대인시장놀〉, 2019, Oil on canvas, 45.5x53cm

박성완은 광주와 전남을 떠나본 적이 거의 없다.

전남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뒤로 광주·전남을 삶과 작업의 토대로 삼았다. 대인시장, 전일빌딩, 강쟁의 정미소 — 그의 캔버스에 담기는 것들은 지도를 펼치면 전부 호남의 한 점이다. 그러나 그 한 점에서 그는 시대 전체를 불러낸다.

굵고 힘 있는 필치, 그리고 기억

굵은 필치와 생생한 색채. 일상의 장면을 새롭게 환기시키는 화면 구성. 그의 작업은 평범한 풍경과 주변의 사소한 순간들 속에서 시대의 감각과 공동체의 기억을 길어 올린다.

광주비엔날레 지역작가 프로그램은 그의 작업을 두고 "소소한 일상과 삶의 주변 모습을 인상파적 감각으로 재해석하며, 특히 '우리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고 소개했다.

공사장 그림일기에서 촛불광장까지

개인전 제목들만 나열해도 작가의 관심이 드러난다.

2012년 《공사장 그림일기》(아시아문화마루), 2015년 《UNDER CONSTRUCTION: 공사장 일기》(스페이스K 광주, 금호갤러리). 공사장 가림막 너머로 사라져가는 동네의 풍경을 기록하는 일. 2021년 《5월로 가는 4월》(전남대학교 용지관). 2024년 《촛불광장에서 만난 사람들》(갤러리생각상자). 전시 제목마다 시간의 결이 또렷하다.

단체전에서도 궤적은 분명하다. 2010년 제8회 광주비엔날레 《만인보》, 2020년 5·18 40주년 《우리가 그곳에 있었다》(오월미술관), 2022년 《기후정의》(가톨릭평생교육원), 2024년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위하여》(동곡미술관). 지역성과 공공성, 회화적 감각과 시대적 문제의식이 같은 궤도를 돈다.

2012년에는 말레이시아 페낭 말리홈 레지던시에 참여했고, 2017년에는 페낭의 차이나하우스에서 《From Berlin to Georgetown》 개인전을 열었다. 2012년 어등미술제 대상 수상.

전일빌딩, 2026

박성완, 〈전일빌딩에서무등〉, 2026, Oil on canvas, 37.8x37.8cm
박성완, 〈전일빌딩에서무등〉, 2026, Oil on canvas, 37.8x37.8cm
〈전일빌딩에서무등〉 — 석양에 잠긴 무등산, 그림자에 잠긴 도시

씨앗페 2026 출품작 〈전일빌딩에서무등〉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썼다.

"광주 오일팔의 상징 중에 하나인 전일빌딩 옥상에 올라간다. 무등산 방향을 바라보는데 석양의 빛이 구름에 앉았다. 무등산 정상에 구름이 지나고 가까이엔 향로봉의 모습도 보인다. 조선대학교 아래로 건물들은 그림자 안으로 들어가 한덩이가 되었다. 구름에만, 몇몇 건물에만 석양 빛이 반사되어 그림자 덩이와 대비를 만든다. 전일빌딩에 올라 그림자와 대비하는 석양빛을 만나 그림으로 메모를 해둔다."

1980년 5월의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전일빌딩. 그 옥상에서 바라본 2026년의 석양. 박성완의 화면은 기록이자 기도다.

강쟁의 정미소, 붉은 덩이

박성완, 〈강쟁정미소〉, 2025, Oil on canvas, 24.2x33.4cm
박성완, 〈강쟁정미소〉, 2025, Oil on canvas, 24.2x33.4cm
〈강쟁정미소〉 — 광주로 나가는 아침 버스를 기다리며 찍어둔 한 장면

〈강쟁정미소〉의 뒷이야기는 이렇다.

"마을 도로가로 정미소가 있다. 녹슨 철판색이 아닌 페인트로 칠한 붉은 색 정미소의 모습이다. 아침인지 오후인지 모르겠지만 색온도로 보아 아침으로 추측한다. 어느 광주로 일보러 나가는 아침 버스를 기다리다가 붉은 덩이가 눈에 들어와 사진을 찍어 두었을 것이고, 다시 사진첩을 뒤적이다가 물감덩이로 옮겨두고자 충동이 솟았을 시간을 머금고 그림이 되었다."

스쳐 지나갈 법한 풍경을 그림으로 불러 세우는 일. 박성완 작업 전체를 관통하는 방식이다.

씨앗페의 세 점

박성완은 씨앗페에 세 점을 내놓았다.

한국 예술인의 84.9%가 제도 금융에서 배제된다. 씨앗페 출품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이 만드는 상호부조 기금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진다.

광주의 오일팔, 전남의 공사장, 마을의 정미소. 박성완이 수십 년 동안 '우리의 이야기'로 옮겨온 자리들이, 이번엔 다른 예술인의 월세와 작업실로 이동한다. 지역에서 지역으로 이어지는 기록의 윤회.

사라지는 것을 기록하는 일

공사장 가림막 너머 동네가 사라지고, 정미소의 붉은 페인트가 낡아가고, 전일빌딩의 총탄 자국은 공식 유적이 되어간다.

박성완의 캔버스는 그 사이에 있다. 사라지기 전에, 박제되기 전에, 누군가의 아침과 누군가의 버스 정류장으로 남아 있던 풍경. 그는 그것을 물감덩이로 옮겨 둔다. 잊지 않기 위해, 그리고 돌려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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