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은 기억한다
자신이 품은 여인들을
유약 없이, 오직 불로 단단해진 흙의 여인들.역사 속 이름 없는 여성과, 대지가 짊어진 모성의 무게.
흙의 여정 —
여성과 대지, 그리고 북방의 길
한애규(b.1953)는 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와 동 대학원에서 도예를 전공하고, 이후 프랑스 앙굴렘 미술학교를 졸업했다. 40여 년에 걸쳐 그는 거의 한 가지 재료만을 고집해 왔다 — 테라코타. 손으로 빚고 불로 구워 단단해진 흙을, 대개 유약을 입히지 않은 채 그대로 두어 따뜻하고 투박한 흙 본연의 몸을 드러낸다.
그의 오랜 주제는 여성이다. 이상화된 형상이 아니라, 풍만하고 강인하며 정형화되지 않은 몸 — 배가 나오고 어깨가 단단한 여인들이 모여 행렬을 이룬다. 비평계는 그를 한국 테라코타의 대모라 부르지만, 작가 자신의 관심은 더 담백하다. 분명 존재했고 존재할 수밖에 없던 여성들 — 그들이 없었다면 역사는 지속될 수 없었으나, 역사가 그 이름을 기억하지 않은 이들이다.
그는 여인들 곁에 말과 늑대를 놓는다. 여성의 곡선을 닮은 짐승들이다. 이들을 통해 그는 더 긴 지리를 그린다: 끊어진 한반도 너머 북방으로, 대륙으로 이어지는 교류의 길. 그의 여인들은 작가의 말을 빌리면 그 대륙의 딸들 — 유랑을 견디고, 짐을 지고, 다친 이를 돌보며 고난을 묵묵히 통과해 온 존재들이다.
세대의 많은 작가가 정제된 유약과 백자의 흰빛을 좇을 때, 한애규는 의도적으로 투박하고 거친 표면을 택했다. 그 거칠음이 핵심이다: 그것은 통념적 아름다움의 기준을 거부하고, 감정과 문화적 기억이 흙에서 곧바로 솟아오르게 한다. 그렇게 태어난 작업은 가장 오래된 동시에 앞을 향한다 — 가장 오래된 소성(燒成) 재료인 테라코타로, 원시적이면서도 열린 미래를 상상한다.
그의 작업은 꾸준한 개인전으로 이어져 왔다 — 《꽃을 든 사람》(가나 아트 센터, 2008), 《조우》(포스코 미술관, 2009), 《폐허에서》(아트사이드 갤러리 베이징, 2010), 《푸른 길》(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2018), 《Beside》(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2022), 《흙의 감정, 형태의 여정》(갤러리세줄, 2024) — 그 모두가 흙과 여성과 기억을 향한 같은 물음의 연장이다.
주요 테마
- 1
유약 없는 테라코타
손으로 빚어 불로 구운 흙을 그대로 둔다. 의도적으로 투박한 표면이 흙 본연의 따뜻함을 남긴다.
- 2
여성과 대지의 모성
풍만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여인들이 행렬을 이룬다. 그들이 없었다면 역사가 지속될 수 없었던 이름 없는 존재들.
- 3
북방으로의 길
여성의 곡선을 닮은 말과 늑대가, 끊어진 한반도 너머 북방·대륙으로 이어지는 교류의 길을 그린다.
작가의 시간
- 1953출생.
- SNU서울대학교 응용미술과 졸업, 동 대학원 도예 전공.
- FR프랑스 앙굴렘 미술학교 졸업.
- 2008개인전 《꽃을 든 사람》, 가나 아트 센터.
- 2009개인전 《조우》, 포스코 미술관.
- 2010개인전 《폐허에서》, 아트사이드 갤러리 베이징.
- 2018개인전 《푸른 길》, 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 2022개인전 《Beside》, 아트사이드 갤러리 서울 — 테라코타 여인 행렬 신작.
- 2024개인전 《흙의 감정, 형태의 여정》, 갤러리세줄.
주요 전시 및 소장
- 단체전: 《한국의 채색화 특별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2022)
- 단체전: 《테라코타, 원시적 미래》, 클레이아크 김해미술관 (2011); 《토요일展》 (2012–2020); 《긴 호흡》, 소마미술관 (2014)
-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서울역사박물관; 대전시립미술관; 전북도립미술관; 서울시청;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 고려대학교 박물관 등
세 편의 에세이 —
흙과 여성, 그리고 기억에 관하여
1왜 흙인가 — 유약 없는 표면이라는 선택
테라코타는 가장 오래된 소성 재료다 — 손으로 빚어 불로 영구히 굳힌 흙. 조각가 에게 그것은 또한 가장 정직한 재료다: 뒤에 숨을 유약도 없고, 차고 정제된 백자의 흰빛도 빌릴 수 없다. 남는 것은 흙 자체의 몸 — 그 결, 그 따뜻함, 그리고 그것을 누른 손의 자국이다.
한애규는 이 노출을 의도적으로 택했다. 세대의 많은 작가가 매끄러운 유약과 백자의 권위를 좇을 때, 그는 표면을 거칠고 헐벗은 채로 두었다. 그 거칠음은 방치가 아니라 주장이다. 매끄러운 표면은 꾸미고, 유약 없는 표면은 그 제작의 진실을 말한다. 그의 손에서 이 매체는, 감정과 기억이 물질에 속한다는 것 — 느낌이 흙에 곧바로 새겨질 수 있다는 것을 고집하는 방식이 된다.
비평계가 40년에 걸쳐 그를 한국 테라코타의 대모라 부른 까닭이 여기 있다. 재료를 발명해서가 아니라, 당대 누구보다 그 재료를 온전히 신뢰했기 때문이다 — 하나의 소박한 물질로 한 작가의 전 작업을 세울 만큼, 오래도록 그리고 끈기 있게.
2이름 없는 여인들의 행렬
그의 여인들은 물려받은 미의 이상을 따르지 않는다. 풍만한 몸, 넓은 어깨, 나온 배 — 가녀린 대신 강인하고 묵묵하다. 나란히 모여 그들은 행렬을 이룬다. 한 명의 영웅이 아니라, 함께 움직이는 다수다.
선택은 분명하다. 작가의 말처럼 이들은 분명 존재했고 존재할 수밖에 없던 여성들 — 그들이 없었다면 역사는 지속될 수 없었으나, 역사가 그 이름을 부르기를 거부한 이들이다. 둥글고 무게 있는 몸을 주고 행렬에 세움으로써, 한애규는 보통 왕과 장군에게만 허락되던 기념비성을 그들에게 되돌린다. 역사의 주인공은 위인이 아니라 생존의 무게를 짊어진 여성이라고, 그의 형상들은 말한다.
대지의 모성이 상징이자 동시에 문자 그대로가 되는 지점이 여기다: 여인들은 우리가 밟는 바로 그 흙으로 빚어져, 불로 영원해졌다. 그들 앞에 서는 일은, 땅이야말로 기록되지 않은 무수한 삶을 품고 먹이고 살아남게 했음을 다시 떠올리는 일이다.
3북방으로 이어지는 길 — 말, 늑대, 그리고 교류
여인들 사이에 한애규는 짐승을 놓는다 — 여인의 몸과 운(韻)을 맞추듯 곡선을 가진 말과 늑대다. 장식이 아니다. 그것은 움직임의 벡터이자, 여인들이 속한 지리의 운반자다: 한때 한반도에서 북으로, 대륙을 가로질러 뻗어 있던 교류의 긴 길.
작가의 서술에서 그의 여인들은 그 대륙의 딸들이다 — 유랑을 견디고, 짐을 지고, 움직이며 다친 이를 돌본 존재들. 그러므로 행렬은 곧 이주이며, 그 길은 지금 분단 으로 끊어진 북방을 향한다. 언젠가의 통일에 대한 바람이 이미지 안에 조용히 접혀 있다: 끊어진 반도가 다시 온전해지고, 옛 대륙의 길이 다시 열리는 상상.
그의 원시적 형상에 미래를 향한 추동을 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흙 인형, 오래된 짐승, 선사의 무게로 이어지는 고고학적 상상력은 향수가 아니라 미래를 그리는 방식이다 — 원시적이면서 동시에 열린, 끊어진 길이 이어지고 이름 없던 이들이 마침내 헤아려지는 세계.
서울에서 앙굴렘으로, 그리고 다시 돌아와, 한 가지 재료로 보낸 40년에 걸쳐 한애규의 작업은 하나의 끈질긴 물음을 추구해 왔다: 흙은 자신이 품은 삶들을 어떻게 기억하는가. 그의 대답은 불로 영원해져 대륙을 향해 걷는 무수한 흙의 여인들이다. 씨앗페에는 이 캠페인의 대상이 아니라, 동료 예술인과의 연대자로 함께한다 — 다음 세대의 예술인들이, 그가 흙에서 일군 그 자유로 계속 작업할 수 있도록.
주요 작품
총 2점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한애규 작가는 동료 예술인을 위한 연대의 뜻으로 씨앗페에 함께했습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이어집니다. 작품 한 점의 구매가,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 한 사람의 다음 한 달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