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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선영 · 사진·회화

나무의
초상

나무를 하나의 얼굴로, 초상으로 바라보다.그리고 아름다운 세계의 자연을 위안으로 건네다.

붓에서 렌즈로 —
자연을 초상으로 바라보다

하선영은 회화를 거쳐 사진에 이르렀다. 그는 먼저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했고, 이후 프랑스로 건너가 아를국립사진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사진이라는 매체에 온전히 헌신하는, 손꼽히게 엄정한 학교 가운데 하나다. 붓에서 렌즈로 건너온 이 이행은 그의 작업에 단절이 아니라 토대가 된다. 그는 사진 이미지에 화가의 인내를 들이고, 한때 그렸을 대상에 사진가의 응시를 들인다.

그의 작업 한가운데에는 거듭 돌아오는 주제가 있다 — 나무의 초상. 나무를 들여다본 작업을 초상이라 부르는 일은 이미 하나의 주장이다. 그것은 나무에게 얼굴의 자리를, 제 나름의 태도와 내력을 지닌 존재의 자리를 내어 준다. 그는 나무를 어딘가로 향하는 길에 스쳐 가는 풍경으로 찍지 않는다. 모델 앞에 멈춰 서듯 나무 앞에 멈춰 서서, 줄기의 기울기와 우듬지의 고유한 무게 같은 그 개별의 성격이 마치 닮은꼴처럼 떠오르게 한다.

팬데믹의 시간 동안 그의 작업은 또 하나의, 더 부드러운 목적을 품게 됐다. 그 힘겨운 시절에 지쳐 가던 이들을 위해, 그는 아름다운 세계의 자연을 위안의 원천으로 삼았다 — 볼거리가 아니라 쉼을 건네는 이미지를 만들면서. 핵심은 현혹하는 데 있지 않고 어루만지는 데 있다. 닫힌 방의 고된 계절 너머에도, 세계는 여전히 빛과 잎과, 돌아가 머물 수 있는 고요를 품고 있음을 일깨우는 것.

함께 놓고 보면, 그의 작업의 두 갈래는 하나의 감각을 그린다. 나무의 초상을 만드는 일은 살아 있는 것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일이고, 자연을 위안으로 건네는 일은 그 응시를 다른 이에게 건네는 일이다. 둘 모두에서, 작업은 보는 이에게 속도를 늦추고, 바라보고, 잠시나마 위로받기를 청한다.

주요 테마

  • 1

    나무의 초상

    풍경이 아니라 하나의 얼굴로 찍힌 나무. 모델처럼 제 태도와 내력을 지닌 존재의 자리를 얻는다.

  • 2

    위안으로서의 자연

    팬데믹 시대에 지친 이들에게, 아름다운 세계의 자연을 볼거리가 아닌 쉼으로 건넨다.

  • 3

    회화에서 사진으로

    렌즈에 들인 화가의 인내. 붓에서 사진 이미지로 옮겨 온 응시의 태도.

수련과 작업

  • 홍익대학교에서 회화 전공.
  • 프랑스 아를국립사진학교에서 사진 전공.
  • 나무의 초상화 작업을 이어 감.
  • 팬데믹 시대의 힘겨운 이들에게 아름다운 세계의 자연으로 위안을 건네는 작업 지속.

작가의 말

오래 바라본 나무는 시선을 되돌려준다. 그것을 초상으로 찍는 일은 나무에게 그 자리를 내어 주는 일이며, 그 고요를 다시 쉼이 필요한 이에게 건네는 일이다.

세 편의 에세이 —
붓과 나무, 그리고 위로에 관하여

1붓에서 렌즈로 — 아를에 간 화가

하선영의 길은 두 개의 분야를 가로지른다. 그는 먼저 화가로 수련했다. 홍익대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뒤 프랑스로 건너가 아를국립사진학교에서 사진을 공부했다. 사진이라는 이미지에 온전히 바쳐진 학교, 오래도록 빛과 바라봄의 역사에 결부되어 온 남프랑스의 도시에 자리한 학교다.

붓에서 렌즈로의 이 이행은 매체의 교체로 읽기 쉽지만, 응시의 연속으로 읽는 편이 옳다. 회화는 느린 봄의 방식을 가르친다. 눈은 머무르고, 손은 돌아오며, 대상은 시간을 두고 쌓여 간다. 하선영은 이 인내를 사진으로 가져왔다. 카메라가 한 순간에 장면을 거둘 수 있는 자리에서, 그는 화가가 긴 한 차례의 앉음을 쓰듯 카메라를 쓴다 — 대상의 성격이 스스로 드러날 때까지 그 앞에 머물면서.

그 결과는 서두르지 않는 사진의 작업이다. 화면은 낚아채진 것이 아니라 구성되고, 톤은 헤아려지며, 대상은 화가가 들였을 시간을 받는다. 하선영의 손에서 두 매체는 경쟁자가 아니라, 바라보는 법에 관한 하나의 길고 이어진 수련이다.

2나무의 초상 — 자라는 것에 얼굴을 내어 주기

나무를 사진으로 찍는 일은 흔하지만, 그 결과를 초상이라 부르는 일은 흔치 않다. 초상은 마주 바라보는 대상을, 내면을 지니고 읽힐 얼굴을 가진 존재를 전제한다. 나무를 그 장르 안에 들임으로써 하선영은 조용한 주장을 한다 — 나무는 배경이 아니라 존재이며, 사람에게 들이는 만큼의 응시를 받을 자격이 있다는 것.

이는 사진이 만들어지는 방식을 바꾼다. 풍경 사진가라면 나무를 더 넓은 장면의 일부로 잡을 수 있겠지만, 하선영은 나무를 떼어 내어 그 개별성에 머문다 — 줄기의 기울기, 우듬지의 펼침과 무게, 그 형상이 서 있어 온 세월을 품는 방식. 저마다의 나무가 자기 자신의 닮은꼴이 된다. 같은 얼굴이 둘 없듯, 같은 나무도 둘 없다.

이 몸짓에는 다정함이 깃들어 있다. 나무에게 얼굴을 내어 주는 일은 자연을 한갓 인간 삶의 무대로 다루는 습관을 거절하는 일이다. 나무의 초상은 보는 이에게 그것을 또 하나의 존재로 맞이하기를 청한다 — 천천히, 주의 깊게, 그것 또한 제 나름의 태도를 지녔음을 알아보면서.

3위로의 풍경 — 고된 계절의 자연

팬데믹의 시간 동안, 하선영의 작업은 첫 번째 목적과 나란히 두 번째 목적을 찾았다. 그 힘겨운 시절에 지쳐 가던 이들 — 닫힌 방, 길어진 불확실함 — 을 위해, 그는 아름다운 세계의 자연을 위안의 원천으로 삼았다. 감탄시키기보다 어루만지기 위한 이미지를 만들면서.

이것은 아름다움의 한 특별한 쓰임이다. 그것은 볼거리를 겨냥하지 않는다. 쉼을 겨냥한다 — 고된 계절의 벽 너머에도 세계는 여전히 잎 사이로 드는 빛과, 나무의 의연함과, 돌아가 머물 고요를 품고 있음을 일깨우는 작은 안도. 작업은 고된 시간의 무게를 잠시 내려놓을 자리로 스스로를 내어 준다.

그의 작업이 이 캠페인의 정신과 만나는 곳이 여기다. 가장 고된 계절을 다른 이들을 위한 위로를 만들며 보낸 작가가, 씨앗페에 이 캠페인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동료 예술인과의 연대자로 함께한다 — 작품 판매 수익이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한국 예술인에게 저금리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그 몸짓은 작업과 이어진다. 바깥으로 향한 응시, 다른 이에게 건네진 위로.

홍익의 회화 작업실에서 아를의 사진학교까지, 하선영은 하나의 차분한 봄의 방식을 추구해 왔다 — 나무에게 초상의 자리를 내어 주고, 자연을 위안으로 건네는 봄. 씨앗페에는 이 캠페인의 대상이 아니라, 동료 예술인과의 연대자로 함께한다 — 그의 작업이 오래 건네 온 위로가, 또 다른 형태로, 지금 그것을 필요로 하는 예술인에게 가닿을 수 있도록.

주요 작품

ARCH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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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인 상호부조

하선영 작가는 동료 예술인을 위한 연대의 뜻으로 씨앗페에 함께했습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이어집니다. 작품 한 점의 구매가,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 한 사람의 다음 한 달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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