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동 — 한국 시사만화의 대부 박재동(朴在東, 1952년 12월 20일 ~ )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만화가이자 예술교육자로, 1974년 만화계에 등단했다. 울산 범서읍에서 태어나...
박재동 — 한국 시사만화의 대부 박재동(朴在東, 1952년 12월 20일 ~ )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만화가이자 예술교육자로, 1974년 만화계에 등단했다. 울산 범서읍에서 태어나 열 살 무렵 부산으로 이주한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만화방에서 만화를 실컷 보며 자랐다. 천시받던 만화방 아들이 서울대학교 회화과에 입학하여 가난한 부모에게 자부심을 안겼고, 긴 방황 끝에 시사만화가의 길을 걷게 된다. 1979년부터 휘문고와 중경고에서 미술교사로 재직하다, 1988년 한겨레신문 창간과 함께 만평 〈한겨레그림판〉을 8년간 연재했다. 80~90년대 날카로운 풍자와 비평으로 국민의 가슴을 시원하게 뚫어주며 한국 시사만화의 대가로 불리게 되었고, "한국의 시사만화는 박재동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는 세간의 평을 얻었다. 1984년에는 민중미술의 효시인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참가하여 오윤, 임옥상, 김정헌, 강요배 등 동시대 중요 작가들과 교류하며 예술적 지평을 넓혔다. 그의 그림은 단순한 정치 풍자를 넘어 민중의 삶과 사회적 발언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업으로 평가받는다. 1996년에는 애니메이션 회사 '오돌또기'를 설립하여 MBC 뉴스데스크의 〈박재동의 TV만평〉을 제작하는 등 만화와 영상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웹툰 작가 강풀은 박재동의 만평을 보고 만화가의 꿈을 키웠다고 밝혔으며, 영화 〈26년〉 속 5·18 애니메이션 장면도 오돌또기가 제작하는 등 한국 만화·영상 문화 전반에 걸쳐 큰 족적을 남겼다. "권력이 대중을 억압하면 할수록 만화가들의 작품은 그만큼 더 치열하고 강력해진다"는 그의 말은 작가 정신을 잘 보여준다. 만화의 사회적 역할을 넓힌 공로로 제10회 고바우만화상, 제4회 민주언론상, 제1회 한겨레상을 수상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애니메이션과 교수로 재직하며 후학 양성에도 힘쓴 그는, "미술에 정답은 없다, 지금 당장 만화가라고 생각하고 만화를 그리라"는 교육 철학으로 수많은 젊은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주요 저서로는 『손바닥 아트』, 『인생만화』, 『실크로드 스케치 기행 1·2』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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