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의 소중함을
간직하다
종이와 점토가 만나 1250도 불 속에서.어둠을 지나 희망에 이르는, 특유의 질감을 지닌 화면.
종이, 점토, 불 —
머무르게 한 순간
류호식은 회화와 도자의 언어를 잇는 페이퍼클레이 페인팅으로 작업한다. 그의 작품들은 부조리한 현실과,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정서를 표명한다 — 외면하기보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마음.
그는 주로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스쳐 가는 그 순간들의 소중함을 기록한다. 과거의 어둠을 통해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발견하며, 일상의 이상적 순간을 간직하려는 소망에서 작품을 만든다.
기법 자체가 이 의도를 품는다. 페이퍼클레이는 점토에 종이 섬유를 섞은 것으로, 작품을 구울 때 섬유가 타 사라지며 미세한 숨구멍이 난 표면을 남긴다. 류호식의 작품들은 1250도 가마에서 소성되며, 바로 그 불 속에서 특유의 질감을 얻는다 — 붓만으로는 내려놓을 수 없는 결.
점토로 그리고 그것을 가마에 맡긴다는 것은, 최종 화면이 손만큼이나 불에 의해 결정됨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가 간직하려는 일상의 한 순간은 단지 그려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머무를 만한 무엇으로 굳어질 때까지 열을 통과한다. 떠오른 표면은 그 통과의 기록이다.
주요 테마
- 1
페이퍼클레이 페인팅 — 종이와 점토
회화와 도자의 혼합. 종이 섬유를 섞은 점토를 1250도 가마에서 구워, 특유의 질감을 지닌 화면으로.
- 2
부조리 속에서 찾는 의미
부조리한 현실과, 그 안에서 의미를 찾고자 하는 정서를 표명한다. 외면하기보다 안으로 들어가려는 마음.
- 3
순간, 그리고 어둠을 지난 희망
자연에서 영감을 받아 스쳐 가는 순간의 소중함을 기록한다. 과거의 어둠을 통해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발견하며.
물성에 관하여
- 매체: 페이퍼클레이 페인팅 — 회화와 도자를 잇는 작업.
- 점토에 종이(셀룰로스) 섬유를 섞은 소지. 소성 중 섬유가 타 사라지며 미세한 숨구멍이 남는다.
- 소성: 1250도 가마에서 마무리되며, 바로 거기서 특유의 질감을 얻는다.
세 편의 에세이 —
물성과 순간, 그리고 가마에 관하여
1페이퍼클레이 — 회화와 도자가 만나는 자리
페이퍼클레이는 가장 단순하게 말하면, 가공된 종이 — 셀룰로스 섬유 — 를 섞은 점토 소지다. 이 첨가가 재료의 거동을 바꾼다. 축축하고 무를 때에도 형태를 붙들고, 그림과 적층을 받아들이며, 마른 부분과 새 부분을 잇는 일을 순수 점토보다 너그럽게 허락한다. 류호식에게 이것은 기술적 호기심이 아니라 전제다. 회화와 도자를 만나게 할 수 있는 바탕.
이 작업을 도자가 아니라 페이퍼클레이 페인팅이라 부르는 것은, 그리는 행위를 중심에 두기 위해서다. 점토는 빚어질 뿐 아니라 표면으로 다뤄지고, 그 위에 그려지고 쌓인다. 그러나 소지가 점토이기에 끝내 불로 가야 한다 — 그리하여 그림은 언제나 동시에 하나의 사물이다. 무게와 결을 지닌, 바라보기 위해 그리고 머무르기 위해 만들어진 것.
이 혼합이 곧 명제 전체다. 작품은 벽에도 가마 선반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으며, 그 사이야말로 의미가 앉는 자리다. 점토를 통과한 이미지이자, 그려진 점토.
2순간 — 자연과 부조리, 그리고 어둠을 지난 희망
류호식은 주로 자연에서 영감을 받으며, 그의 작업의 주제는 그 순간들의 소중함이다. 거대하거나 영원한 것이 아니라 스쳐 가는 것 — 지나가리라는 사실에 바로 그 가치가 깃든 한순간. 그런 순간을 그림으로 만든다는 것은, 그것이 흔적 없이 지나가도록 두기를 거부하는 일이다.
이 소망은 어려움을 모른 채 도착하지 않는다. 그의 작품들은 부조리한 현실 속에 품은 정서 또한 표명한다 — 세계가 쉬이 의미를 내어주지 않으며, 의미란 주어지기 보다 찾아야 하는 것이라는 감각. 그 찾음이 곧 작업이다. 과거의 어둠을 통해 그는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발견하며, 일상의 이상적 순간은 어둠을 부정함이 아니라 그것을 통과함으로써 간직된다.
그래서 그림은 순진하지 않으면서도 조용히 희망적이다. 평범한 한순간을 그 가치가 드러날 만큼 붙들면서, 같은 몸짓 안에 그런 순간이 얼마나 쉽게 사라지는지에 대한 앎을 함께 품는다. 하나를 간직하는 일은 작은 믿음의 행위다.
31250도 — 불이 결정하는 것
페이퍼클레이의 모든 작품은 끝내 가마로 가야 하며, 류호식의 작품들은 1250도에서 소성된다. 그 열 속에서 소지에 엮인 종이 섬유가 타 사라지고, 곱고 숨 쉬는 다공질이 남는다. 그렇게 생긴 질감은 칠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다 — 손만으로는 수행할 수 없는 변형의 흔적.
소성은, 그것에 자신을 맡기는 모든 만드는 이에게, 통제의 내려놓음이다. 가마에 들어간 것이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 열은 줄이고, 굳히고, 다시 색을 입힌다. 갈라지게 할 수도, 빛나게 할 수도 있다. 불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최종 표면이 의도와는 다른 무엇에 의해서도 결정됨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 그리고 그것이 상실이 아니라, 작품에 결을 부여하는 바로 그것이다.
방법과 의미 사이에 조용한 운(韻)이 있다. 간직하고 싶은 한순간이 열에 맡겨져 변한 채로, 그러나 머무르는 것으로 돌아온다. 류호식이 기록하려는 소중함은 끝내 불에 의해 머무를 무엇으로 고정된다. 완성된 작품의 질감은 그 순간이 통과했고, 남았다는 증거다.
그의 작업 전체에서 류호식은 하나의 차분한 물음을 추구한다 — 스쳐 가는 순간의 소중함을 어떻게 머무르도록 간직할 것인가. 그의 대답은 종이와 점토와 불로 건네진다. 일상의 한순간을 가마에 맡겨, 간직될 무엇으로 굳을 때까지. 그는 씨앗페에 이 캠페인의 대상이 아니라, 동료 예술인과의 연대자로 함께한다 — 작품 판매 수익이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에게 저금리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주요 작품
총 1점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류호식 작가는 동료 예술인을 위한 연대의 뜻으로 씨앗페에 함께했습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이어집니다. 작품 한 점의 구매가,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 한 사람의 다음 한 달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