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 위에 잇는
조각보
둥근 그릇의 관성을 각진 형태로 깨다.천에서 흙으로 옮겨 온 잇기의 미감.
다시 이은 전통 —
흙으로 지은 조각보
김태희는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도예과를 졸업한 도예가다. 그의 작업은 하나의 전제에서 출발한다 — 전통은 유리 진열장 안에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읽히고, 해체되고, 현대적인 형태로 다시 이어 붙여지는 살아 있는 언어라는 믿음.
대부분의 도자가 둥근 그릇을 본래의 형태로 받아들이는 자리에서 — 물레가 거의 중력처럼 흙을 원으로 돌려세우는 자리에서 — 김태희는 그 관성을 깬다. 그는 그릇에 각진 형태를 들여, 면과 모서리가 으레 기대되는 곡선을 가로지르게 한다. 그렇게 빚어진 도자는 친숙하면서도 낯설다. 재료에서는 전통적이되, 실루엣에서는 현대적이다.
이 형태 위에 그는 조각보의 이미지를 잇는다. 조각보는 자투리 천을 이어 붙여 짓는 한국 전통의 보자기다. 조각보는 절약의 예술이자 솔기의 예술이다 — 하나하나로는 보잘것없는 작은 천 조각들이, 가장자리와 가장자리를 맞대 꿰매어지며, 끝내 뜻밖의 아름다움을 지닌 한 장의 천이 된다. 김태희는 그 잇기의 문법을 흙의 표면과 구조 위로 옮겨 온다.
그렇게 그는 숨은 논리를 공유하는 두 공예 사이에 조용한 선을 긋는다. 도자와 조각보는 모두 쓰임과 보살핌의 예술이다 — 손에 들리고, 감싸고, 식탁 위에 놓이고, 더불어 살아가도록 만들어진 것들. 조각보의 솔기를 그릇의 면으로 옮겨 옴으로써, 그는 두 전통이 재료의 경계를 가로질러 서로에게 말을 건네게 한다.
그래서 그의 작업은 전통으로부터의 결별이라기보다, 전통에 대한 다시 읽기다. 각진 그릇 하나하나는 일찍이 조각보가 던졌던 것과 같은 차분한 물음을 던진다 — 따로 떨어진 조각들이 정성껏 이어질 때, 어떻게 간직할 만한 하나의 전체가 되는가.
주요 테마
- 1
전통 도자의 재해석
보존이 아니라, 해체하고 현대적으로 다시 잇는 살아 있는 언어로서의 전통.
- 2
각진 형태
둥근 그릇의 관성을 깨는 면과 모서리. 재료는 전통적이되 실루엣은 현대적이다.
- 3
조각보의 이미지
자투리를 가장자리끼리 잇는 보자기의 문법을, 흙의 표면과 구조 위로 옮겨 온다.
작가 소개
- 매체도예
- 학력서울과학기술대학교 도예과 졸업.
- 작업전통 도자기의 재해석 — 각진 형태와 조각보의 이미지를 흙 위에 잇는다.
조각보에 관하여
조각보는 자투리 천을 이어 붙여 짓는 한국 전통의 보자기다. 절약과 솔기의 예술로서, 홀로는 보잘것없는 작은 조각들을 뜻밖의 아름다움을 지닌 한 장의 천으로 만든다. 그것은 쓰임의 물건이자, 잇기의 고요한 미감이다.
세 편의 에세이 —
흙과 솔기, 그리고 쓰임에 관하여
1원을 깨다 — 각진 형태의 이유
물레는 원을 원한다. 돌려진 흙은 둥근 형태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안식을 찾는다 — 사발, 항아리, 잔. 도자 전통에 너무 깊이 짜여 들어가 있어, 선택이라기보다 필연처럼 느껴지는 형태들이다. 김태희의 첫 동작은 그 필연을 거절하는 것이다.
곡선이 기대되던 자리에 면과 모서리, 곧 각진 형태를 들임으로써, 그는 그릇을 머뭇거리게 한다. 그릇 둘레를 매끄럽게 미끄러지는 데 익숙한 눈은 모서리에서 멈춰 서고, 익숙한 둥긂을 향해 뻗은 손은 대신 평면을 만난다. 이것은 전통에 대한 거부가 아니라, 전통을 다시 보이게 하는 방식이다. 원을 조금이라도 깨는 일은, 둥근 그릇이 언제나 하나의 결정이었지 결코 법칙이 아니었음을 보는 이에게 일깨운다.
각진 형태는 또한 그다음에 올 것을 위해 표면을 준비한다. 면으로 깎인 몸체는 뚜렷한 평면들을 내어 준다 — 가장자리를 지닌, 이어질 채비가 된 화면들. 매끄럽고 둥근 표면이 어떤 솔기든 녹여 버리는 자리에서, 각진 그릇은 솔기를 읽히게 간직한다. 그릇의 기하와 조각보의 기하가, 바로 여기서 운을 맞추기 시작한다.
2조각보의 문법 — 미학으로서의 잇기
한국 전통의 보자기 조각보는 절약에서 태어났다. 천이 귀하던 살림에서, 옷감을 마름질하고 남은 자투리는 쓰기엔 너무 작고 버리기엔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그 조각들은 간직되었고, 이어졌다 — 가장자리에 가장자리를 꿰매며 — 끝내 충분히 모이면, 선물을, 책을, 살림 보따리를 감쌀 만큼 넉넉한 한 장의 천이 되었다.
절약으로 시작된 일이, 여러 세대를 지나며 하나의 미학이 되었다. 조각들을 붙들어 둔 솔기는 감춰지지 않고 구성되었다. 저마다 크기와 빛깔이 다른 자투리들이 이루는 불규칙한 색면들은, 한 필의 천으로는 결코 낼 수 없는 균형으로 짜였다. 여기서 아름다움은 잇기의 아름다움이다 — 제각기 다른 조각들이 그 차이를 잃지 않은 채 서로에게 속하게 된 아름다움.
김태희가 흙 위로 옮겨 오는 것이 바로 이 문법이다. 그는 조각보의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논리를 빌려 온다 — 색면, 가장자리, 의도된 솔기. 각진 그릇의 면들 위에서, 조각보의 이미지는 전체란 무엇인가를 사유하는 한 방식이 된다. 이음매 없는 단일한 덩어리가 아니라, 정성껏 이어져 하나이기로 합의한 여럿으로서.
3쓰임의 도자 — 보살핌의 두 공예
그릇과 천 사이의 형식적 대화 밑에는 공유된 바탕이 있다 — 도자와 조각보는 모두 쓰임의 공예다. 그릇은 들리고, 채워지고, 식탁에 놓이도록 만들어진다. 보자기는 감싸고, 지키고, 나르도록 만들어진다. 어느 쪽도 보기만을 위한 물건이 아니다. 각각은 손 안에서, 자신이 섬기는 일상 속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래서 이 짝지음은 단지 영리하다기보다 그토록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김태희가 잇는 것은 두 개의 장식이 아니라 두 개의 보살핌의 실천이다 — 식탁의 보살핌과 보따리의 보살핌, 음식을 간직하는 일과 살림을 간직하는 일. 각지고 조각보가 새겨진 그의 그릇들은, 만들어진 물건이 무엇보다 먼저 다른 사람의 쓰임에 건네지는 것임을 기억한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도자는, 전통을 재해석하는 일이 그 쓰임을 버리는 일이라는 생각에 조용히 맞선다. 그는 실루엣을 현대화하고 솔기를 빌려 오지만, 작업은 두 공예의 가장 오래된 목적에 충실히 남는다 — 사람이 실제로 더불어 살 수 있는, 견고하고 아름다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 다시 읽힌 전통은 박물관 진열장이 아니라 식탁으로 돌아온다.
각진 그릇에서 이어진 솔기까지, 김태희의 작업은 하나의 차분한 물음을 추구한다 — 따로 떨어진 조각들이 정성껏 이어질 때, 어떻게 간직할 만한 하나의 전체가 되는가. 흙으로 빚어진 그 대답이, 조각보의 문법을 쓰임의 현대 도자로 옮겨 온다. 씨앗페에는 이 캠페인의 대상이 아니라, 동료 예술인과의 연대자로 함께한다 — 작품 판매 수익이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에게 저금리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주요 작품
총 1점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김태희 작가는 동료 예술인을 위한 연대의 뜻으로 씨앗페에 함께했습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이어집니다. 작품 한 점의 구매가,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 한 사람의 다음 한 달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