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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 도예

흙으로 빚는
새순

자연의 생명력을 도자의 물성으로 옮기다.나무와 새순으로 이룬 심플하고 자연주의적인 작품세계.

흙과 자람 —
손으로 형상을 얻는 자연

김지영은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을 주로 빚는 도예가다. 그의 작업은 언제나 하나의 원천에서 다시 출발한다 — 자연. 그는 장식을 향해 손을 뻗는 대신, 자라나는 것에서 형상을 길어 올린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맡긴 과제는, 살아 있는 것의 생명력을 흙이라는 느리고 고정된 물성 속으로 옮기는 일이다.

그의 작업은 나무라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모인다. 〈순 돋는 나무〉 연작에서 대상은 잎이 무성한 나무가 아니라, 그 직전의 순간이다 — 가지에서 밀고 올라오는 새순, 보이게 되는 바로 그 찰나에 붙들린 자람. 돋는 새순을 흙으로 빚는다는 것은, 움직이는 것을 그 움직임을 죽이지 않은 채 멈춰 세우는 일이다. 그 역설이 그의 작업의 고요한 중심이다.

짝을 이루는 〈나무 한 그루〉 연작은 시선을 한층 더 좁힌다. 홀로 선 나무 한 그루로 충분해진다 — 하나의 형상 안에 담긴 온전한 세계. 여기서 자연주의는 충실한 모사의 문제가 아니라 응시의 문제다. 나무는 정말 중요한 것만 남을 때까지 단순해지고, 남는 것은 그것의 생명이다.

그의 조형 언어는 의도적으로 절제되어 있다. 과잉을 덜어내고, 한 점 한 점을 깨끗하고 단순한 실루엣으로 깎아 내어, 물성 그 자체가 — 구워진 흙의 무게, 표면의 고요함이 — 말하게 한다. 그 절제 속에서 자연주의적 세계가 열린다. 재현된 자연이 아니라, 정련되고 느려지고 오래 남도록 빚어진 자연이.

두 연작을 하나로 묶는 것은 하나의 믿음이다 — 자람은 빚을 만한 가치가 있고, 살아 있는 것의 가장 작은 시작은 구운 흙의 영속을 누릴 자격이 있다는 믿음. 그런 의미에서 김지영의 도자는 인내로 간직하는 행위다. 흙 속에 기억된 새순, 충분히 오래 바라보아 비로소 보이도록 붙들어 둔 나무 한 그루.

주요 테마

  • 1

    자연에서 받은 영감

    자라나는 것에서 길어 올린 형상. 살아 있는 것의 생명력을 흙이라는 고정된 물성으로 옮긴다.

  • 2

    나무와 새순

    〈순 돋는 나무〉·〈나무 한 그루〉에서 자람은 보이게 되는 찰나에 붙들린다. 움직임을 죽이지 않은 채 멈춰 세운 살아 있는 것.

  • 3

    심플하고 자연주의적인 형상

    과잉을 덜어내고 깨끗한 실루엣으로 깎아 낸 한 점. 충실한 모사가 아니라 응시로서의 자연주의.

한눈에 보기

  • 매체: 도예 —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작업
  • 연작: 〈순 돋는 나무〉 — 새순이 돋는 순간에 붙든 자람
  • 연작: 〈나무 한 그루〉 — 홀로 선 한 그루에 담은 온전한 세계
  • 감각: 심플하고 자연주의적 — 물성이 말하게 하는 절제

세 편의 에세이 —
흙과 자람, 그리고 남는 것에 관하여

1흙이라는 물성 — 살아 있는 것을 고정한다는 일

흙은 자연주의자에게 역설적인 재료다. 처음에는 부드럽고, 손에 응답하며, 거의 살아 있는 듯하다 — 그러다 가마 속에서 영구히 굳어, 더는 변하지 않는 것이 된다. 도예를 한다는 것은 움직임을 고요로, 살아 있는 것을 지속하는 것으로 바꾸는 일이다. 자연의 생명력을 주제로 삼는 작가에게 그 전환은 한계가 아니라 바로 그 핵심이다.

김지영은 자라는 것을 — 나무를, 새순을 — 취해 그것에 구운 흙의 밀도를 부여한다. 그 결과는 자연의 모형이 아니라 자연을 붙들어 두는 일이다. 자람의 순간은 더 이상 덧없지 않다. 다시 찾아올 수 있고, 손 위에서 무게를 가늠할 수 있으며, 내일 또 바라볼 수 있다. 물성은 기억이 바라기만 하는 일을 해낸다 — 간직하는 일을.

표면이 형상만큼이나 중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고요하고 단순한 표면은 흙을 흙으로, 무게를 무게로 드러낸다. 살아 있던 무언가가 남을 무언가로 옮겨졌다는 사실로부터 그 무엇도 시선을 빼앗지 않는다. 자연주의는 단순한 닮음이 아니라 그 옮김의 행위 속에 산다.

2〈순 돋는 나무〉 — 보이게 되는 찰나의 자람

돋는 새순은 자연의 가장 조용한 사건이자 가장 완전한 사건 가운데 하나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모든 일이 막 일어나려 한다. 〈순 돋는 나무〉 연작은 바로 이 문턱을 주제로 삼는다 — 제 크기에 다다른 나무가 아니라, 시작하는 행위 속의 나무를.

새순을 택한다는 것은 가치에 관한 하나의 선언이다. 가장 작은 시작이 이미 빚을 만한 것이라고, 아직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 가능성이 응시와 형상을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 흙 속에서 새순은 거창함이 아니라 정성으로 빚어진다 — 위로 향하는 작은 몸짓에, 오래 남도록 만들어지는 품위가 주어진다.

여기에는 다정함이 있되 감상은 없다. 형상은 단순하게 머물고, 몸짓은 절제되어 있다. 작업은 새순이 굳이 설명되지 않아도 제 뜻을 지닌다고 믿는다 — 생명은 계속되기를 고집하고, 그것이 제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은 간직할 만하다는 뜻을.

3〈나무 한 그루〉 — 하나의 형상에 담긴 온전한 세계

〈순 돋는 나무〉가 시작을 지켜본다면, 〈나무 한 그루〉는 온전함을 지켜본다. 홀로 선 나무 한 그루가 충분한 것으로 건네진다 — 숲도 아니고 풍경도 아닌, 온전히 헤아려지도록 들어 올려진 살아 있는 형상 하나.

여기서의 단순함은 어렵게 얻어진 것이다. 나무를 깨끗한 형상 하나로 줄인다는 것은 나무가 무엇인지를 정하고, 나머지 전부를 놓아 버리는 일이다. 그 덜어냄에서 살아남는 것은 일반적인 형태가 아니라 하나의 고유한 현존이다 — 이 나무, 선 채로, 살아 있는. 자연주의는 본질을 지키고 그것이 나머지를 감당하리라 믿는 일이다.

돋는 연작 곁에 놓이면, 나무 한 그루는 작은 호(弧)를 완성한다 — 막 시작된 새순에서, 그저 온전히 존재하는 나무로. 둘은 함께 자람을 향한 하나의 연속된 응시를 그린다. 정성껏 빚은 살아 있는 것 하나면 한 세계로 족하다고, 도예가가 조용히 고집하는.

돋는 새순에서 홀로 선 나무 한 그루까지, 김지영의 도자는 하나의 차분한 물음을 추구한다 — 살아 있는 것의 생명력을 어떻게 흙이라는 지속하는 물성 속으로 옮길 것인가. 그 대답은 손으로, 자람에 귀 기울이는 심플하고 자연주의적인 형상으로 빚어진다. 씨앗페에는 이 캠페인의 대상이 아니라, 동료 예술인과의 연대자로 함께한다 — 작품 판매 수익이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에게 저금리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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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영 작가는 동료 예술인을 위한 연대의 뜻으로 씨앗페에 함께했습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이어집니다. 작품 한 점의 구매가,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 한 사람의 다음 한 달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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