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몸짓에 깃든
마음의 결
일상 속 인물의 자세를 회화로 옮기다.고요히 모은 두 손에 담긴 마음의 결.
붙든 자세 하나 —
일상에 깃든 정서
김정원은 일상 속 인물의 자세와 정서를 회화로 옮겨 가는 작가다. 그의 주제는 극적인 사건이 아니라, 작고 습관적인 움직임이다 —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몸이 자신을 가누는 방식, 너무 평범해서 우리가 더는 들여다보지 않게 된 몸짓.
그 몸짓들 가운데 하나가 닻처럼 거듭 돌아온다 — 〈손 모은 사람〉. 모은 손은 인간의 가장 흔한 자세 중 하나다 — 기다림의, 기도의, 인내의, 조용히 자신을 추스르는 몸짓의 표지. 김정원의 손에서 그 몸짓은 그릇이 된다. 다른 말로는 옮길 수 없는 감정의 결을 담아내는, 평범한 움직임.
바꿔 말하면 그의 관심은 얼굴보다 몸에 가깝다 — 자세 그 자체가 어떻게 정서를 나르는가에. 돌린 어깨, 숙인 고개, 마주 모은 두 손. 이것들은 내면이 선언되지 않은 채 떠오르는 자리다. 그는 그것을 그릴 수 있을 만큼 오래 바라보고, 그 응시 속에서 일상은 들여다볼 만한 무언가가 된다.
그렇게 도착하는 그림은 느림을 청한다. 목소리를 높이지도, 장면을 연출하지도 않는다. 단 하나의 자세를 내려놓고, 그것과 마주한 이가 거기 담긴 마음의 결을 알아보리라 믿는다 — 익숙한 몸짓 하나가 문득 우리를 자신의 고요한 시간으로 되돌려 놓는 방식으로.
주요 테마
- 1
정서가 된 자세
얼굴보다 몸. 돌린 어깨나 숙인 고개가 선언되지 않은 내면을 어떻게 나르는가.
- 2
〈손 모은 사람〉
기다림과 인내, 조용히 자신을 추스르는 모은 손. 다른 말로는 옮길 수 없는 감정의 그릇이 된 몸짓.
- 3
일상의 결
느림을 청하는 그림. 충분히 오래 바라보아 들여다볼 만해진, 단 하나의 평범한 움직임.
작가의 시선
- 매체: 회화. 인물과 그 자세가 변함없는 주제다.
- 일상 속 인물의 작고 습관적인 움직임을 응시한다 — 우리가 더는 들여다보지 않게 된 몸짓을.
- 〈손 모은 사람〉이 작업의 닻이 된다 — 감정의 결을 담아내는 평범한 자세.
- 그림은 느림을 청하며, 거기 담긴 고요한 정서를 보는 이가 알아보리라 믿는다.
세 편의 에세이 —
몸짓과 자세, 그리고 일상에 관하여
1몸짓이라는 언어 — 말보다 먼저 오는 몸
말하기 훨씬 전부터, 우리는 자세로 자신을 가눈다. 기다리는 몸, 버티는 몸, 쉬고 있는 몸 — 저마다 얼굴이 아직 짓지 못한 의미를 나른다. 김정원의 회화는 이 전제에서 출발한다. 몸은 그 자체로 하나의 언어이며, 몸짓은 말이라면 납작하게 만들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는 것.
그의 인물은 일상에서 길어 올린 것이고, 그 움직임은 우리가 알아채지 못한 채 행하는 종류의 것이다 — 평범한 한 시간을 견디며 사람이 자세를 미세하게 고쳐 가는 방식. 그것을 그림으로써 그는 습관이 지워 버린 것으로 우리의 시선을 되돌린다. 하루의 분주함에서 들어 올려져 화면 위에 멈춰 선 몸짓은 다시 읽을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조용한 야심이고, 정확한 야심이다. 그것은 작가에게 몸을 가까이 읽기를 요구한다 — 어깨의 어떤 기울기가 피로로 읽히고 어떤 기울기가 인내로 읽히는지, 자세가 어디에서 쉼에서 기다림으로 기우는지를. 감정은 결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자세 안에 지어지고, 보는 이의 알아봄에 맡겨진다.
2〈손 모은 사람〉 — 감정의 그릇
그가 거듭 돌아가는 모든 자세 중에서, 모은 손이 가장 집요하게 되돌아온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흔한 몸짓 중 하나이고, 그 흔함이 곧 요점이다 — 모은 손은 어느 한 장면에만 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기다림의 형상이고, 기도의, 인내의, 다음에 올 무엇 앞에서 조용히 자신을 추스르는 사람의 형상이다.
그 몸짓이 그토록 열려 있기에, 거기 부어진 거의 모든 감정을 담아낼 수 있다. 김정원의 〈손 모은 사람〉에서 두 손은 그릇이 된다 — 다른 말로는 옮길 수 없는 감정의 결을 나르는, 평범한 움직임. 그림은 인물이 무엇을 느끼는지 말해 주지 않는다. 자세를 건네고, 그 감정이 보는 이의 삶이 이끄는 자리에 가라앉도록 둔다.
여기에는 너그러움이 있다. 누구나 해 본 몸짓을 택함으로써, 작가는 누구나 그 안에서 자신을 알아볼 여지를 남긴다. 화면 위에 모은 손은 그의 것이고, 인물의 것이며, 잠시 동안은 보는 이 자신의 것이 된다.
3일상을 응시한다는 것 — 돌봄의 한 형식으로서의 느림
일상이란 정의상 우리가 지나쳐 버리는 것이다. 우리는 평범한 시간을 너무 빨리 지나가 그것을 보지 못하고, 그 시간을 채우는 몸짓들은 주목받지 못한 채 스쳐 간다. 그러니 일상을 그린다는 것은, 우선 바라볼 만큼 충분히 느려지는 일이다 — 그리고 그 느림 자체가 일종의 돌봄이다.
김정원의 작업은 이 응시 위에 세워진다. 그는 인물을 극화하거나 빌려 온 의미를 입히지 않는다. 자세 하나를, 그것이 이미 품고 있는 것을 찾아낼 만큼 오래 바라본다. 그렇게 도착하는 그림은 보는 이에게도 같은 느림을 청한다 — 빠른 눈길을 거절하고, 머무는 눈길에 답하는 그림.
요란하고 즉각적인 것을 떠받드는 문화 속에서, 이것은 조용히 급진적인 제안이다. 평범한 몸짓에 깃든 마음의 결이 한 점의 그림에 값하고, 우리의 시간에 값한다는 것. 일상을 가까이 들여다보는 일은 그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일이다 — 한 몸의 작은 움직임이 그 무엇과도 대등한 주제라고.
모은 두 손에서 일상 속 인물의 고요한 자세에 이르기까지, 김정원의 회화는 하나의 물음을 추구해 왔다 — 평범한 몸짓이 어떻게 감정의 결을 담아내는가. 그의 대답은 그림으로 건네진다. 가까이 보고, 느려지고, 일상이 들여다볼 만한 무언가가 되도록. 씨앗페에는 이 캠페인의 대상이 아니라, 동료 예술인과의 연대자로 함께한다 — 작품 판매 수익이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에게 저금리의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주요 작품
총 2점의 작품을 볼 수 있습니다.
김정원 작가는 동료 예술인을 위한 연대의 뜻으로 씨앗페에 함께했습니다. 작품 판매 수익의 일부는 예술인 상호부조 대출 기금으로 이어집니다. 작품 한 점의 구매가, 오늘 금융 차별을 겪는 예술인 한 사람의 다음 한 달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