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관훈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고, 23년 뒤 다시 개인전을 여는 작가. 신연진은 잡지와 한지를 주재료로, 일상의 물건들을 특별한 풍경으로 번역한다.

신연진이 쓰는 재료는 잡지와 한지다.
물감 대신 잡지. 캔버스 위에 찢고 붙인 잡지의 색과 이미지가 그림의 문법이 된다. 여기에 한지가 섞인다. 인쇄된 이미지의 광택과 한지의 결이 한 화면에서 만나는 자리.
"나에게 창의적이라는 것은 단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 새로운 의미와 역할을 부여하여 또 다른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작가의 선언문이다.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다시 쓰는 일. 창조가 아니라 재배치로 예술이 성립되는 자리.
2002, 그리고 2025
신연진은 홍익대학교 회화과에서 학사와 석사를 마쳤다.
첫 개인전은 2002년 관훈갤러리에서 열렸다. 같은 해 《Cosmetic Art 2002 — Colorful! Powerful!》(인사아트센터), 2001년 《4induction》(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등 초기 그룹전 기록도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긴 공백이 있다. 2020년, 유나이티드 갤러리에서 열린 젊은 작가 공간 지원전 공모 당선 부스 개인전을 거쳐, 2022년 《Form 2022》(CICA 미술관, 김포), 《아시아프》(홍익대학교 현대미술관) 등에 다시 이름이 등장한다.
2023년 《킵티크》 시리즈(다다프로젝트·아미디갤러리)와 《예측 가능한 미래》(강동아트센터 기획전), 《제18회 광화문 국제아트페스티벌 아시아현대미술 청년작가전》(세종미술관). 2024년 《강동 청년미술인 #우리의 순간》, 《관악x서초 교류형 아트페어 BnB》.
2025년에는 두 번의 개인전이 이어졌다. 감일 노팅힐라운지의 《킵티크 기획 개인전》, 강북삼성병원 나눔존의 《일상적인 것들의 꼴라주》. 23년 만에 다시 개인전의 호흡이 짧아진 자리. 긴 공백 뒤의 회복이자 가속이다.
LEGO와 wishlist

씨앗페 2026 출품작 두 점은 2025년에 제작됐다.
제목 자체가 작가의 주제를 요약한다. LEGO TECHNIC 42110은 실제 레고 테크닉 시리즈의 제품 번호다. 한 소비자가 사고 싶어 할 구체적인 물건을 제목으로 올리는 방식. wishlist 또한 '원하는 것들의 목록'이다. 일상의 소비 욕구를 직접적으로 끌어올려 캔버스로 옮긴다.
"잡지가 가진 이미지나 색감이 물감이나 다른 미술재료의 역할을 대신 할 수 있다는 점, 기존의 것을 재활용하고자 하는 부분과 일상적이고 평범함을 표현하기에 적합한 재료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잡지라는 재료 선택에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이미 가공된 이미지와 색을 '즉시 쓸 수 있는 물감'처럼 활용할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버려질 재료를 다시 쓰는 재활용의 태도.
재활용과 상호부조
한국 예술인의 84.9%가 제도 금융에서 배제된다. 씨앗페 출품 작가들이 내놓은 작품이 만드는 상호부조 기금은, 금융 차별을 겪는 동료 예술인에게 저금리 대출로 이어진다.
신연진의 작업 방식과 씨앗페의 구조는 같은 동사를 공유한다. 재활용. 이미 존재하는 것을 다시 쓴다. 다 읽은 잡지가 캔버스로 건너가고, 한 사람의 작품이 다른 사람의 작업실로 건너간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존에 있는 것에 새로운 의미와 역할을 부여하기 위해서.
일상의 특별함
〈LEGO TECHNIC 42110〉과 〈wishlist〉는 거창한 주제를 들지 않는다. 갖고 싶은 작은 물건, 그것을 향한 평범한 욕망.
그러나 작가의 손끝에서 그 평범함은 조금 특별해진다. 잡지의 색이 레고가 되고, 레고가 하나의 풍경이 된다. 씨앗페에서도 같은 변형이 일어난다. 평범한 한 점의 판매액이 평범하지 않은 대출의 기회가 되는 순간. 신연진의 일상이 공동의 일상으로 번지는 자리다.
신연진의 작품
함께 읽으면 좋은 글
이 글이 도움이 되셨다면, 함께 읽으면 좋은 글들을 소개합니다:
- 첫 작품을 산 사람들 — 네 명의 컬렉터에게 듣다 — 첫 작품을 들이는 순간은 모두 다릅니다. 취업 첫 월급, 엄마의 생일, 이혼 후 새 집 — 씨앗페에서 첫 작품을 산 네 사람의 이야기.
- 이윤엽 — '파견미술가'의 다색 목판, 노동의 결을 새기다 — 한국 다색 목판화 거장 이윤엽. '파견미술가' 액티비스트, 공장 고무판 매체, 농부·노동자 모티브,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5점 큐레이션.
- 이철수 — 민중판화에서 선(禪)의 판화로, 한국 목판화의 한 결 — 1954년생 한국 목판화의 거장 이철수. 1980년대 민중판화 → 선(禪)·영성·평화의 판화로 30년 작업 변화. 충북 제천 농사+판화. 5점 큐레이션.
관련 매거진
같은 길을 걷는 작가들
- 김우주 — 어릴 적 밭 주변의 이름 모를 야생초: 김우주의 Wildflower Collage
- 이홍원 — 단재 신채호의 영정을 그린 화가: 이홍원의 숲속의 노래
- 이익태 — 보이지 않는 세계의 번역자: 이익태(1947-2025)를 기리며
작품 구매 가이드
씨앗페
발행 2026-04-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