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은 2026년 9월 23일부터 10월 12일까지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오윤이 새긴 판화 전작 187종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자리에 걸렸습니다. 생애를 따라 이어진 여덟 개 장과 장마다 대표 판화 몇 점을 되짚습니다.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 되돌아보기 — 8개 장으로 따라가는 전시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은 2026년 9월 23일부터 10월 12일까지 열려 12일 월요일 18시에 막을 내렸습니다.
이 전시에는 오윤이 새긴 판화 전작 187종이 걸렸습니다. 생전에 찍은 판화와 유족이 원판으로 찍은 사후 판화를 아울러 187종이고, 전작이 한자리에 걸린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주최는 한국스마트협동조합, 장소는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68 동덕빌딩 B1의 동덕아트갤러리, 전시의 이름은 《새김에서 각인으로: 1946—1986, 오윤의 궤적》이었습니다.
전시는 한 사람의 시간표를 따라 이어졌습니다. 장마다 무엇을 다뤘고 어떤 판화가 놓였는지를 차례로 적었습니다.
순서는 생애를 따랐습니다 — 여덟 개 장
전시는 오윤의 생애와 작업을 따라 여덟 개 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장의 이름과 내용을 따라가면 187종이라는 숫자가 한 사람의 시간표 위에 놓입니다.
| 장 | 제목 | 이 장이 다루는 것 |
|---|---|---|
| 1 | 오윤은 누구인가 | 1946년 부산 동래에서 태어남. 아버지는 『갯마을』의 소설가 오영수, 외가는 동래 학춤을 이어 온 집안. 서울대 미술대학 조소과, 1969년 현실 동인 |
| 2 | 십 년의 침묵 | 1970년 졸업 뒤 경주와 일산의 전돌공장에서 흙을 만지며 보낸 시간,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까지 |
| 3 | 왜 판화였나 | 필요한 만큼 찍어 나누는 판화를 고른 까닭. 에디션 번호가 없다는 점 |
| 4 | 무엇을 새겼나 | 장 보러 가는 할머니, 호미를 치켜든 어머니, 일을 마치고 웅크려 쉬는 몸 |
| 5 | 거리로 나간 판화 | 1984년 박노해 시집 『노동의 새벽』 초판 표지, 책과 인쇄물로 퍼져 나간 판화 |
| 6 | 진도에서 배운 춤 | 1984년 가을 진도에서 만난 씻김굿과 북춤, 그 뒤 판화에 쏟아져 나온 춤추는 몸 |
| 7 | 칼노래, 처음이자 마지막 | 1986년 5월 서울 그림마당 민의 첫 개인전 《칼노래》 |
| 8 | 사십 년 뒤, 바람으로 | 장례식에서 읽힌 정희성의 추모시, 그리고 40주기 |
1장에서 3장 — 사람, 침묵, 선택
앞의 세 장은 판화 이전의 시간이었습니다. 오윤은 1969년 현실 동인을 만들었지만 학교와 보안당국의 제지로 전시를 열지 못했고, 1970년 대학을 졸업한 뒤에는 화실 대신 전돌공장으로 갔습니다. 십 년 동안 작품을 발표하지 않다가 1980년 현실과 발언 창립전에 이르렀다고 판화전 안내 페이지는 적었습니다. 오윤 자신의 말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미술이 어떻게 언어의 기능을 회복하는가 하는 것이 오랜 나의 숙제였다."
3장의 핵심은 하나였습니다. 오윤의 판화에는 에디션 번호가 없습니다. 번호를 매겨 희소성을 높이기보다 더 많이 찍고 더 많이 나누려 했기 때문입니다. 동료들은 판화에 몰두한 오윤이 "이것은 문화 게릴라"라고 웃던 모습을 기억합니다. 한 판에서 여러 장을 찍어 사람들 손에 건넨다는 생각 위에서 보면, 전시장의 판화 한 장 한 장은 같은 판에서 나간 수많은 장 가운데 하나입니다.
4장 — 웅크린 몸
4장은 가난하고 고달픈 사람들의 얼굴과 몸을 말했습니다. 이 장의 설명 가운데 "일을 마친 몸이 웅크린 채 쉽니다"라는 문장 곁에 놓이는 화면이 〈피로〉(1982)입니다. 한국일보는 동덕아트갤러리의 걸작으로 〈칼노래〉, 〈무호도〉, 〈낮도깨비〉와 함께 이 작품을 꼽았습니다.

화면 위아래를 검은 띠가 눌러 닫고, 그 사이에 푸른 바탕과 흙빛 바닥이 깔려 있습니다. 한 사람이 얼굴을 파묻고 몸을 둥글게 접었습니다. 등은 주황빛 살색 위에 굵고 거친 검은 선이 결을 이루고, 허리 아래로는 흰 옷이 큼직한 면으로 남았습니다. 화면 오른쪽에서 팔이 앞으로 뻗어 손가락이 펼쳐져 있고, 오른쪽 아래로는 맨발 한쪽이 바닥에 놓였습니다. 몸이 화면 거의 전체를 차지해서, 쉬는 사람인지 쓰러진 사람인지 한 번에 가려지지 않습니다.
- 34x24cm · 저피지(한지)에 목판화, 수채 채색 · 1982 · ₩2,0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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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 책의 얼굴이 된 그림
1984년 풀빛 출판사가 펴낸 박노해의 첫 시집 『노동의 새벽』 초판 표지가 오윤의 판화였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시집과 같은 제목의 판화 〈노동의 새벽〉(1984)도 나왔다고 뉴시스가 전했습니다.

온라인 갤러리의 〈노동의 새벽〉은 인물이 등을 돌리고 서 있는 화면입니다. 웃통을 드러낸 등은 주황빛이고, 근육의 결이 굵은 검은 선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화면 왼쪽의 팔은 머리 뒤로 올라가 꺾였고, 오른쪽 팔은 주먹을 쥔 채 아래로 늘어졌습니다. 흰 바지는 칼자국으로 파낸 얼룩 같은 결을 품고, 맨발이 바닥을 딛습니다. 인물 뒤에는 푸른 면이 둥글게 감싸고, 그 바깥은 흰 빗금이 흩뿌려진 검은 바탕입니다. 새벽이라는 제목에 맞춰 푸른빛이 몸 둘레를 밝히는 것처럼 보입니다.
- 17.7x27.3cm · 저피지(한지)에 목판화, 수채 채색 · 1984 · ₩1,700,000
- 작품 페이지 →
이 장의 제목처럼 오윤의 판화는 1978년 이오덕이 엮은 『일하는 아이들』의 표지가 되었고, 노동 현장의 전단지와 거리의 포스터로도 쓰였습니다. 한국일보 기사에는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김지하의 『오적』, 박경리의 『토지』처럼 오윤의 판화가 표지에 들어간 책 모음 사진이 실렸습니다. 『토지』는 〈지리산3〉(1977)이 표지작이었다고 온라인 갤러리의 작품 설명에 적혀 있습니다.
- 25x26.3cm · 저피지(한지)에 목판화 · 1977 · ₩1,8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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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 몸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곳
6장은 1984년 가을, 간경화 요양차 내려간 전라남도 진도에서 시작했습니다. 오윤은 그곳에서 상여 행렬을 보고 씻김굿을 만났으며 판소리와 육자배기를 듣고 북춤을 배웠습니다. 판화전 안내 페이지는 진도에서 돌아온 뒤 오윤의 판화에 춤추는 몸이 쏟아져 나온다고 적었고, 연합뉴스는 칼을 쥔 채 뛰어오르는 사람, 춤추는 호랑이, 북을 치는 사람, 소리꾼 같은 움직임이 두드러진 형상이 자주 등장한다고 전했습니다. 이 장의 판화는 움직이는 몸을 따라 시선을 옮기게 했습니다.
춤추는 호랑이의 판화로 〈무호도〉(1985)가 있습니다.

색이 없는 흑백 한 판입니다. 호랑이는 뒷다리로 일어서 몸을 틀었고, 꼬리 하나가 화면 오른쪽에서 S자로 솟습니다. 얼굴은 화면 왼쪽으로 돌려 수염을 세우고 송곳니를 드러냈습니다. 줄무늬는 굵은 검은 획과 종이의 흰 면이 번갈아 몸을 감아 올라갑니다. 흰 바탕을 파내 만든 몸이라, 칼이 지나간 자리가 곧 호랑이의 살갗입니다.
- 35x25.6cm · 저피지(한지)에 목판화 · 1985 · ₩2,4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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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해의 〈낮도깨비〉는 색이 있는 쪽입니다.

붉은 얼굴의 도깨비 둘이 어깨를 맞대고 섰습니다. 둘 다 머리 위로 김 같은 구불구불한 줄 세 가닥이 피어오르고, 이빨을 드러내며 웃습니다. 화면 왼쪽 도깨비는 납작한 방망이를 쥐었고 허리에 붉은 띠를 맸습니다. 오른쪽 도깨비는 초록 가시 방망이를 짚고 푸른 띠를 맸습니다. 흰 옷에는 검은 윤곽선이 굵게 둘리고, 발목에는 노란 고리가 걸렸습니다. 무서운 얼굴을 하고 있는데도 입꼬리는 웃는 쪽으로 올라가 있습니다.
- 35.8x54cm · 저피지(한지)에 목판화, 수채 채색 · 1985 · ₩3,20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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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무인추무의〉(1985)는 이 장의 흥이 한 화면에 모인 판이었습니다.

모서리를 둥글린 노란 면이 화면 대부분을 덮고, 그 안에 사람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위쪽의 사람들은 분홍, 하늘색, 겨자색, 보라색 옷을 입고 허리를 꺾고 팔을 벌리며 서로 엇갈립니다. 한가운데에는 지팡이에 몸을 기댄 이도 섞여 있습니다. 아래쪽은 북과 장구를 맨 풍물패입니다. 오른쪽 아래에는 붉은 깃발이 서서 세로로 春無仁 秋無義라는 글자를 달았습니다. 위에서 아래로 갈수록 소리가 굵어지는 화면입니다.
- 40x62cm · 저피지(한지)에 고무판화, 수채 채색 · 1985 · ₩3,200,000
- 작품 페이지 →
오윤이 굿판과 탈, 도깨비에 닿은 길은 한국 샤머니즘 미술에서 이어서 읽을 수 있습니다.
7장 — 〈칼노래〉
7장은 1986년 5월 서울 그림마당 민에서 열린 오윤의 처음이자 마지막 개인전 《칼노래》를 다뤘습니다. 뉴시스에 따르면 오윤은 이 전시를 앞두고 40여 점을 쏟아냈고, 미술평론가 유홍준은 그것이 오윤 목판화 전체의 절반에 이르는 양이라고 했습니다. 개인전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7월 5일 오윤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표제작 〈칼노래〉(1985)는 이 전시의 원본으로 걸렸습니다. 칼을 움켜쥔 사람이 한쪽 발을 번쩍 든 이 한 장을 틀과 칼의 선, 얼굴, 둘레의 글자꼴 순서로 따라 읽은 글은 오윤 〈칼노래〉 한 점 깊이 읽기에 있습니다.
8장 — 바람으로
마지막 장은 정희성이 장례식에서 읽은 추모시를 판화전 안내 페이지의 인용으로 들려줬습니다. "그는 바람처럼 살았으니까 / 언제고 바람으로 다시 올 것이다."
뉴시스는 전시장 벽을 따라 크고 작은 판화가 빼곡하게 이어진다고 전했습니다. 목판화의 힘은 칼이 지나간 깊이와 종이에 눌린 자국, 먹이 번진 결에 있어서, 도판은 선과 색의 배치까지만 전합니다.
크기의 폭
오윤의 판화는 크기의 폭이 컸습니다. 〈보리〉(1978)는 12.3x14.6cm이고, 〈팔엽일화〉(1985)는 53.5x53.5cm입니다. 〈박꽃누나〉와 〈메아리소년〉처럼 같은 이름 아래 번호나 부제가 붙은 연작은 한 장이 대개 18x13.5cm 안팎입니다.

〈박꽃누나_박꽃누나〉는 검은 바탕을 파내 흰 선으로 인물을 세웠습니다. 소녀가 화면 가운데에서 한 손을 짚고 앉아 정면을 바라보고, 오른쪽에서는 머리를 깎은 소년이 소녀 쪽으로 돌아앉았습니다. 위쪽에는 꽃이 핀 가지와 나무가 검은 면에 흰 점과 선으로 들어 있습니다.
- 18.0x13.5cm · 저피지(한지)에 목판화 · 1983 · ₩600,000
- 작품 페이지 →

〈메아리소년_01_민이와 소영이〉에서는 굽이치는 선이 두 아이를 동심원처럼 감쌉니다. 화면 왼쪽의 소년은 두 손을 입가에 모아 소리를 내고, 오른쪽의 소녀는 두 손을 앞에 모으고 서 있습니다. 소리가 퍼지는 모양을 물결로 새긴 것처럼 읽힙니다.
- 21x17.8cm · 저피지(한지)에 목판화 · 1984 · ₩800,000
- 작품 페이지 →
전시가 남긴 이야기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오윤》은 2027년 2월 14일까지 열립니다. 평창동의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모음동에서 무료로 볼 수 있고, 판화 원판과 습작, 드로잉, 노트와 창작 도구가 함께 나옵니다. 한국일보는 1986년 그림마당 민 개인전에서 굿판을 벌인 영상이 이번 전시에서 처음 공개됐다고 소개했습니다. 두 전시를 나란히 놓은 비교는 오윤 40주기, 서울의 두 전시를 함께 보는 법에 있고, 판화전 둘레의 종로 전시 동선은 10월 종로, 걸어서 보는 전시 일곱 곳에 있습니다.
유족이 원판으로 찍은 후쇄 판화는 이 사이트의 오윤 작가 갤러리에서 볼 수 있습니다. 30년 전에 찍은 것이 마지막 인쇄이고, 일반에 판매된 것은 올해 1월 씨앗페가 처음이었습니다. 유족의 뜻에 따라 40주기인 올해를 끝으로 판매를 중단하고, 이후 판매 여부는 유족이 정합니다. 전시 출품작과는 별개로 마련된 판화입니다. 사후 판화가 어떤 물건인지는 오윤 사후 판화 가이드에, 목판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판화 기법 지도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마당극 「강쟁이 다리쟁이」의 나리 마당과 오윤이 새긴 탈 이야기는 오윤이 만든 탈, 등에 지고 노는 나리들에서 읽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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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묻는 질문
Q.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은 언제 어디서 열렸나요? A. 2026년 9월 23일부터 10월 12일 18시까지 서울 종로구 우정국로 68 동덕빌딩 B1의 동덕아트갤러리에서 열렸습니다. 주최는 한국스마트협동조합입니다.
Q. 어떤 작품이 걸렸나요? A. 오윤이 새긴 판화 전작 187종입니다. 생전에 찍은 판화와 유족이 원판으로 찍은 사후 판화를 아우르고, 전작이 한자리에 걸린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습니다. 표제작 〈칼노래〉(1985)를 비롯해 〈무호도〉, 〈춘무인 추무의〉, 시집과 같은 제목의 〈노동의 새벽〉(1984)이 원본으로 나왔습니다.
Q. 8개 장은 무엇이었나요? A. 오윤의 생애와 작업을 따라 여덟 개 장으로 이어졌습니다. 「오윤은 누구인가」, 「십 년의 침묵」, 「왜 판화였나」, 「무엇을 새겼나」, 「거리로 나간 판화」, 「진도에서 배운 춤」, 「칼노래, 처음이자 마지막」, 「사십 년 뒤, 바람으로」 순입니다.
Q. 오윤의 판화에는 왜 에디션 번호가 없나요? A. 번호를 매겨 희소성을 높이기보다 더 많이 찍고 더 많이 나누려 했기 때문입니다. 3장 「왜 판화였나」가 이 선택을 다뤘습니다.
Q.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의 《오윤》은 어떤 전시인가요? A. 2026년 8월 27일부터 2027년 2월 14일까지 평창동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모음동에서 열리는 전시로, 판화 원판과 습작, 드로잉, 노트와 창작 도구가 함께 나옵니다. 무료입니다.
참고한 출처
- 오윤 40주기 특별 판화전 안내 — 씨앗페 온라인 갤러리, https://www.saf2026.com/exhibition/oh-yoon-prints (기간·여덟 개 장 구성·정희성 추모시 인용)
- 뉴시스, 박현주 미술전문 기자, 「'칼노래' 오윤 판화 187종 한자리…40주기 특별 판화전」, 2026년 9월 29일 — 원문
- 연합뉴스, 박의래 기자, 「오윤이 새긴 민중의 삶과 에너지…판화 187종 한자리에」, 2026년 9월 16일 — 원문
- 한국일보, 인현우 기자, 「40년 전 민중을 향했던 판화가의 고민, '집단적 흥'의 경지에 오르다」, 2026년 9월 28일 — 원문
- 서울시립미술관, 《오윤》 전시 안내(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2026년 8월 27일–2027년 2월 14일) —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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