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우리은행
매매 과정에서 매수인께 이 작품의 존재를 알려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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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 서울시장께 드리는 시민 청원
2026년 5월 10일까지 — 1만 명의 이름을 모읍니다
참여 시·도 16/17 · 24h 신규 261명
1974년에 새겨진 그 벽이, 50년 만에 사라질 위기에 놓였습니다.
오윤(1946~1986). 마흔이라는 짧은 생애 동안 그는 회화·판화·조각을 합쳐 400여 종의 작품을 남기셨고, 2005년 옥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으며, 200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습니다. 그가 평생을 바친 작업의 무게는, 시간이 흐른 지금도 우리 곁에 닿아 있습니다.
1974년, 그가 스물여덟이던 해. 군대에서 위장병으로 의병 제대한 그는 경주와 일산의 전돌 공장에서 흙을 다루며 노동자들과 함께 땀을 흘리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상업은행(현 우리은행)으로부터 동대문·구의동 지점의 내외벽 테라코타 부조를 의뢰받습니다. 노동자였던 청년이, 노동자들이 매일 드나드는 자리에 새긴 양면의 부조 — 청년 작가가 공공미술을 맡기 어려웠던 시대에, 한국 공공미술 초기의 흔치 않은 자리에 서 있는 작품입니다.
이 벽을 새긴 뒤로도 그가 평생 가장 강렬하게 매달린 매체는 목판화였습니다. 부산 시장의 억센 웃음, 부두 노동자의 땀, 짓눌린 한(恨)을 신명나는 춤사위로 풀어내는 민중의 생명력 — 그는 이 모든 것을 칼끝으로 나무에 새겼습니다. 그리고 그 판화를, 프레스기조차 없이 숟가락으로 문질러 시집 표지에, 노동 현장 전단지에, 아이들의 동화책 삽화에 아낌없이 나누었습니다. ‘미술은 많은 사람이 나누어야 한다’ — 그가 위에서 남긴 그 말 그대로.
올해 봄, 그 건물이 매각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세 가지 일이 이어지면서, 작품 보존의 길이 열렸습니다.
매매 과정에서 매수인께 이 작품의 존재를 알려주셨습니다.
작품의 가치를 알아보고자 직접 국립현대미술관에 문의하시고, 오윤 작가 유족의 연락처를 찾아 연락해 오셨습니다.
오윤 선생 유족께서는 작품의 보존과 공공 이관을 적극적으로 원해 오셨습니다.
이제 시민의 손이 더해지면, 작품은 우리의 품으로 돌아옵니다.
차기 서울시장께서
오윤의 1974년 구의동 벽화의
안전한 해체·보존·이관을 해결해 주십시오.
성함, 이메일, 전화번호만으로 서명하실 수 있습니다.
↓ 서명하기이름을 더 무겁게 걸고 싶으시면, 시민 추진위원으로도 함께해 주십시오. 추진위 발족 선언문에 이름이 함께 오릅니다.
↓ 서명 폼에서 추진위원 체크이 페이지를 다섯 분께만 전해 주십시오. 그분들이 또 다섯 분께 전하시면, 5월 10일까지 1만 명의 이름이 모입니다.
↓ 공유하기작품이 있는 건물은 올해 8월부터 철거되어 그 자리에 새 건물이 들어섭니다. 그 과정에서 작품은 사라집니다.
참고
지금 시민의 이름이 모이지 않으면, 50년을 견뎌온 작품이 끝내 사라집니다.
이 청원은 한국스마트협동조합(예술인협동조합)이 시작한 시민 운동입니다. 협동조합은 오윤 작가 유족과 마음을 모아 작품의 보존 해체와 공공 이관을 맡았고, 매수인과 작품 반출 동의서를 체결했습니다.
「오윤 작품 보존 추진위원회」를 5월 초 발족할 예정이며, 미술계·시민사회·학계 인사들이 공동 위원장과 위원으로 함께하실 자리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추진위원장 명단은 확정되는 대로 이 자리에 게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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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 세계, 그리고 동료 예술인의 내일
100여 점의 목판화로 새긴 시대의 정신을 만나보세요. 작품 한 점이 살아있는 예술인의 상호부조 대출 기금이 되어, 떠난 작가의 신념이 오늘의 동료에게 닿습니다.
씨앗페(SAF2026)는 한국 예술인의 금융 차별을 풀기 위한 상호부조 캠페인입니다. 살아 있는 예술인이 마땅히 누려야 할 자리(상호부조 대출), 그리고 떠난 예술인이 남긴 작품이 마땅히 가야 할 자리(오윤 청원) — 결은 다르지만, 한국 예술인의 사회적 지위와 작품의 공공적 가치를 함께 회복하려는 같은 마음 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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